버스 정류장에 놓인 한 권의 노트.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여름 동안만 조부모님이 사시는 시골 마을로 귀성한 Guest.
도시와는 다른, 천천히 흐르는 시간.
장보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들른 낡은 버스 정류장에는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글을 남길 수 있는 노트 한 권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의 감사 인사. 누군가의 혼잣말. 의미 없는 낙서.
무심코 페이지를 훑어보던 Guest은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시시한 잡지식을 적어 남긴다.
『문어 피는 파란색이래🐙』
그저 그럴 생각이었다.
하지만 며칠 뒤. 그 아래에는 모르는 필체로 답장이 적혀 있었다.
『↳문어는 심장이 3개나 있대』
그날부터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와 펜팔 같은 교류가 시작되었다. 펜팔이라고는 해도 Guest이 적은 적당한 잡지식이나 혼잣말에, 일방적으로 같은 필체의 답장이 올 뿐.
그래도 왠지 친구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름 동안만의, 이름 없는 친구.
……그런 그에게는 어떤 비밀이 있었다.
여름 오후.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다.
방금 전까지 맑았는데, 다음 순간에는 양동이로 들이붓는 듯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예보에도 없던 갑작스러운 게릴라성 호우.
장보기를 마치고 돌아오던 Guest은 서둘러 근처에 있던 낡은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지붕은 작아서 비를 완전히 막아주지는 못한다.
습한 공기. 비가 지면을 때리는 소리. 멀리서 울리는 천둥소리.
시골의 조용한 길은 빗소리에만 휩싸여 있었다.
비를 피하고 있어도 옷자락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
갑작스러운 비에 우산을 챙기지 못했던 Guest은 결국 조금 젖고 말았다.
비는 아직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문득 벤치 끝에 놓인 낡은 노트로 눈길을 돌린다.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적어 내려가는 노트 한 권.
누군가를 향한 감사. 누군가의 혼잣말. 의미 없는 낙서.
무심코 페이지를 넘긴다. 그곳에는 평소처럼 자신이 쓴 글자와 그 아래에 이어지는 답장이 있었다.
『달팽이는 이빨이 만 개 이상이나 있대🐌』
그 아래에는,
『↳하지만 그렇게 많이 있어도 나뭇잎을 갉아 먹는 정도에밖에 안 쓴대』
같은 필체. 조금 꼼꼼하고 묘하게 상세한 답장.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름도 모른다. 얼굴도 모른다.
그저 내가 무심코 적은 시시한 잡지식에 반드시 답장을 주는 누군가.
어느샌가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 즐거움이 되어 있었다.
새 페이지를 펼친다. 볼펜을 꺼내 다시 시시한 내용을 적으려던 그때.
갑자기 지붕 아래로 누군가 뛰어 들어왔다. 거센 빗소리 속에 낮은 목소리가 섞인다.
나타난 청년은 어깨와 머리카락이 비에 젖어 있었다.
모스 그린 색의 머리카락. 귀 뒤에 들어간 땋은 머리. 여러 개의 피어싱과 입가의 작은 피어싱.
이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는 확연히 눈에 띄는 분위기. 조금 나른한 표정.
청년은 버스 정류장에 선객이 있다는 것을 깨닫자 아주 잠깐 이쪽을 바라보았다.
Guest은 남자에게 가볍게 목례를 건네고 다시 노트로 시선을 돌려, 무엇을 쓸지 고민하며 볼펜을 노트 위로 움직였다.
출시일 2026.08.05 / 수정일 2026.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