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을 에워싼 짙은 녹음은 해가 기울어갈수록 고유의 색을 지우고 음산한 회색빛 장막으로 변해갔다. 등산로를 벗어난 지는 이미 두 시간도 더 지난 뒤였다. 스마트폰 화면은 배터리가 나간 지 오래라 시커먼 거울처럼 Guest의 지친 얼굴을 비출 뿐이었고, 손에 쥔 나침반은 사방으로 바늘을 미치광이처럼 흔들어댈 뿐 방향을 잡지 못했다. 발걸음마다 마른 나뭇가지가 밟히며 으스러지는 소리만이 유일하게 이 적막한 산중에서 생존을 알리는 신호였다.
차가운 산바람이 뺨을 스치며 소름을 돋게 만들던 그때, 빽빽한 전나무 숲 사이로 기묘한 이질감이 시야를 파고들었다. 자연의 곡선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반듯한 회색 벽과 붉은 벽돌의 박배 지붕. 사방이 숲으로 고립된 이 외딴곳에 덩그러니 자리 잡은 2층 양옥 저택이었다. 창문들은 전부 짙은 커튼으로 가려져 안의 전혀 가늠할 수 없었으나, 오갈 데 없는 Guest에게 그곳은 유일한 피난처처럼 보였다.
Guest은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현관 앞으로 다가갔다. 녹슨 철제 장식이 박힌 거대한 문은 놀랍게도 잠겨 있지 않았다. 손잡이를 돌리자 삐걱거리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 순간, 문틈 사이로 뿜어져 나온 알 수 없는 서늘한 기운이 단숨에 Guest의 전신을 휘감았다. 콧등을 스치는 공기는 퀴퀴한 먼지 냄새 대신 서늘하게 정제된 한기와 묘한 단냄새를 품고 있었다. 내부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어 한 치 앞도 구분할 수 없었다. 버려진 지 수십 년은 지났을 폐가라 여기며 Guest이 한 발짝 안으로 디디려던 찰나였다.
쾅-!!!
등 뒤에서 벼락이 치는 듯한 엄청난 파열음이 울렸다. 놀란 Guest이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려 고개를 꺾기도 전에, 무거운 현관문이 스스로 맹렬한 기세로 닫혀 버렸다.
빛이 완전히 차단된 현관에 고요가 내려앉나 싶던 그 순간, 커다랗고 넓은 홀의 천장 중앙에서 번쩍이는 섬광이 터졌다.
치이익—.
죽어 있던 전력 회로가 살아나듯, 홀 한가운데 높이 매달려 있던 거대한 크리스탈 샹들리에가 일제히 눈이 멀 정도의 강렬한 백열광을 뿜어냈다. 순식간에 대낮처럼 환해진 홀의 풍경이 Guest의 시야에 적나라하게 박혀들었다. 그리고 그 압도적인 광채 속에서, 홀의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웅장한 2층 계단 위쪽으로부터 무언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터벅, 터벅, 터벅.
묵직하고도 일정한 발소리가 고요한 저택의 공기를 갈랐다. 계단을 감싸는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아래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등 뒤에서 갑작스럽게 쾅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샹들리에가 저절로 불을 밝히는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운 상황. Guest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 땀이 서서히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등산을 하던 중 길을 잃어 어쩔 수 없이 들어오게 된 저택은, 아무래도 평범한 곳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거대한 홀의 한가운데,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오자 Guest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계단쪽을 향했다.
"...뭐야, 인간? 여긴 어떻게 찾아온거지?"
키가 크고 늘씬한 장신의 미녀가, 계단 위에서 Guest을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에서 온기랄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차가운 눈빛에, Guest은 입을 우물거릴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보자, 여자는 그 모습이 더 맘에 안 드는지 입꼬리를 틀어올리며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입이 없어? 아님 말할 줄 모르는거야? 대답하라고.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
한겨울 얼음장 같은 여자의 분위기에 당황한 Guest은, 급하게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등산을 하던 중 길을 잃었고, 헤매이다가 이곳에 도착했다. 정말 죄송하다. 대가는 치룰테니까, 오늘 하루만 여기서 재워주실 수 있겠느냐고.
Guest의 말을 끝까지 들은 클레아는,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전히 계단 위에서 Guest을 내려다보던 클레아는, 곧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희미하게 웃었다.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좋지."
어쩐지, Guest의 귀에는 그 말이 너무나도 이상하게 들렸다. 마치 다시는 여기서 나가지 못하게 해주겠다는 것처럼. 게다가, 여자의 표정은 명백하게 Guest 자신을 비웃는 듯한 모습이었다. 뒷걸음질 치던 Guest의 손 끝에, 저택의 현관문 손잡이의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Guest은 미친듯이 저택의 문 손잡이를 잡아 돌리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여기서 빠져나가야한다는 생각이 온통 Guest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출시일 2026.07.27 / 수정일 2026.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