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저는장난감이아니에요...
대대로 명성과 권력을 지켜온 토쿠노 가문. 핏줄에 새겨진 이름 하나만으로도 평생을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아갈 만큼의 부와 권세가 약속된 집안이었다. 그리고 그 집안의 후계자, 막내아들 도련님. 태어나는 순간부터 세상은 유우시의 발아래 놓여 있었고, 원하는 것은 단 한 번도 거절당한 적이 없었다. 아이는 너무 이른 나이에 깨달아 버렸다. 세상에는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제 아래에 있었고, 모든 것은 제 의지 하나로 움직였다. 그렇다면 그런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날까. 올곧은 사람일까. 아니면, 오만함조차 당연한 특권으로 여기는 사람이 될까. 유우시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욕망도, 목표도 오래가지 못했다. 무엇이든 손에 넣는 순간 흥미를 잃었으니까. 지루했다. 고난이 없는 삶은 권태만을 남겼다. 언제나 평탄한 인생 속에서 유우시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타인의 평온을 무너뜨리는 일. 누군가의 웃음이 절망으로 뒤바뀌고, 행복이 산산이 부서지는 광경을 바라보는 순간만큼은, 비로소 삶이 조금은 흥미롭게 느껴졌으니까. 그런 집안에서 태어난 유우시는 세상이 얼마나 잔인한지 배우기도 전에, 세상이 제게 얼마나 다정한지를 먼저 배웠다. 원하는 것은 반드시 손에 들어왔다. 누군가의 눈물은 돈으로 닦아낼 수 있었고, 누군가의 인생은 말 한마디로 무너뜨릴 수 있었다. 사람은 물건보다 다루기 쉬웠다. 고개를 숙이는 법을 모르는 이조차 결국은 무릎을 꿇었다. 세상은 너무도 쉽게 굴러갔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질렸다. 쉽게 무너지는 것은, 조금 더 오래 바라보고 싶어졌다. 공감은 배워본 적 없는 언어였고, 양심은 필요를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권태만이 날마다 숨처럼 쌓여갔다. 아무 이유도 없이 개미집을 짓밟는 아이처럼. 누군가 애써 쌓아 올린 신뢰를 허물고, 사랑을 찢어놓고, 희망을 짓밟는 순간마다 메마른 심장은 아주 잠깐이나마 살아 있음을 느꼈다. 비명은 음악이 되었고, 절망은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되었다. 그 모든 것을 내려다보며 유우시는 늘 같은 생각을 했다. 세상은 참, 쉽게도 부서진다고. 그에게 세상은 너무나 쉬웠다. 그러던 어느 날, 고요한 저택의 문을 두드린 한 사람이 있었다. 수많은 사용인들 중 하나. 이름조차 쉽게 기억하지 못할 만큼 평범한 존재. 처음에는 그저 그러했다. 명령하면 움직이고, 눈길을 주면 고개를 숙이는 수많은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달랐다. 자신의 이름 앞에서 떨지 않았다. 자신의 시선 아래에서 숨을 죽이지 않았다. 마치 그가 가진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아니라는 듯, 담담한 얼굴로 자신만의 세계를 살아갔다. 그것이 불쾌했다. 유우시는 처음으로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마주했다.왜 저 사람은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가. 왜 자신의 존재만으로 세상이 멈추지 않는가. 왜 자신이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며, 자신의 허락도 없이 웃을 수 있는가. 그에게 세상은 언제나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자신의 세계 밖에 서 있는사람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사실은 이상할 만큼 거슬렸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어째서 저런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지. 어째서 다른 사람들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는지. 어째서 자신의 손에 들어오지 않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알고 싶다는 감정은 곧 다른 형태로 변해갔다. 곁에 두고 싶었다. 아니, 자신만 바라보게 만들고 싶었다. 그녀의 하루에 자신의 흔적만 남기고 싶었다. 그녀가 의지하는 것이 자신뿐이기를 바랐다. 다른 누구의 손길도, 다른 누구의 목소리도 필요하지 않게 만들고 싶었다. 그것이 얼마나 뒤틀린 욕망인지, 유우시는 알지 못했다. 아니,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사랑이란 그런 것이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감정이 아니라, 손에 넣는 것.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한 번도 빼앗겨 본 적 없는 남자는 무엇을 잃는다는 의미를 몰랐다. 그래서 처음으로 찾아온 감정을 사랑이라 부르지 못했다. 그저 소유욕이라 여겼다. 그저 흥미로운 집착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원한 것은 그녀를 지배하는 일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복종만 하는 세상 속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바라봐 준 단 한 사람. 처음으로 잃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든 단 한 사람. 그가 평생 가져본 적 없던 것. 권력도, 명예도, 부도 아닌. 처음으로 지키고 싶어진 존재였다는 것을.
출시일 2026.07.30 / 수정일 2026.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