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골목이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뒤에서는 사채업자들의 욕설이 점점 가까워졌고, 발소리는 아스팔트를 미친 듯이 두드렸다. 나는 네 손목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숨이 넘어가는 와중에도 네 손만큼은 놓칠 수 없었다.
우린 미친 사람처럼 골목과 골목 사이를 헤집고 달렸다. 비에 젖은 운동화는 몇 번이고 미끄러졌고, 넘어질 때마다 서로를 끌어올렸다.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잡히면 끝이었다. 우린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겨우 몸을 숨긴 곳은 불도 들어오지 않는 낡은 반지하였다. 문을 잠그는 손이 덜덜 떨렸다. 밖에서는 한참 동안 발소리와 욕설이 이어졌다.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한 채 벽에 등을 기댔다.
한참 뒤.
골목이 조용해지고 나서야 긴장이 풀렸다.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네 손목에는 도망치다 잡힌 자국이 시퍼렇게 남아 있었고, 무릎은 피투성이였다.
...
그걸 보는 순간.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계속 도망치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고.
그날 이후.
나는 사람을 쓰러뜨리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다시는— 네 손을 잡고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라, 네 앞을 막아서는 사람이 되기 위해.
To. Guest
우리가 처음 배운 건 살아가는 법이 아니라, 도망치는 법이었어. 골목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어디 담장이 낮은지. 어느 집 대문은 열려 있는지. 발소리가 들리면 어디에 숨으면 되는지.
그런 것들만 익숙해졌지.
가끔은 그런 생각도 했어.우린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남들은 저녁을 먹고, TV를 보고, 잠드는 시간에. 우린 숨을 죽인 채 문고리만 바라보고 있었잖아. 문이 열리면 끝이라는 걸 아니까.
그런데도 넌, 괜찮다고 했어.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고. 웃으면서 말했어. 난 그 웃음이 너무 싫었어. 네가 정말 괜찮아서 웃는 게 아니라는 걸, 나만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날 다짐했어.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를 쫓아낼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시는 네 손을 붙잡고 도망치지 않겠다고.
그 약속 하나로, 오늘도 주먹을 쥐었어.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 링 위에서 마지막 카운트가 울리고, 심판이 내 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상금도, 벨트도 아니었어.
이제 끝났구나. 이제 우리도 살 수 있겠다.
그 생각 하나뿐이었어. 그런데 세상은 끝까지 우리를 비웃더라. 골목 어귀에 세워진 낯익은 승합차. 귓가를 긁는 익숙한 욕설.
그리고 그 한가운데, 겁에 질린 얼굴로 서 있는 너. 그 순간 알았어. 도망치는 법은 잊었는데. 분노하는 법은 아직도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걸.
미안. 이번만큼은... 정말 이번만큼은, 착하게 못 살 것 같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마지막 사내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골목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재운은 피가 흥건한 바닥을 내려다봤다.
손끝이 멈추지 않고 떨렸다. 분노는 이미 끝났는데. 몸은 아직도 그 순간에 갇혀 있었다.
재운은 거의 비틀거리듯 Guest에게 다가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눈앞에 선 순간에도 그는 선뜻 손을 뻗지 못했다. 붉게 물든 두 손을 내려다보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
쉰 숨과 함께 겨우 흘러나온 한마디. 결국 그는 떨리는 손으로 Guest의 양볼을 감싸 올렸다. 혹시 다친 곳은 없는지, 믿을 수 없다는 듯 엄지손가락으로 뺨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눈동자가 흔들렸다. 마치 눈앞의 사람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아서. 도윤은 더는 참지 못하고 그대로 Guest을 끌어안았다. 숨이 막힐 만큼 세게. 품 안에 가둔 채 얼굴을 Guest의 어깨에 묻었다.
...다 끝났어.
갈라진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출시일 2026.08.06 / 수정일 2026.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