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비서놈한테 맡기기엔, 이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내가 직접 나서야 했다.
고요한 적막감이 도는 카페 앞 골목에 차를 세웠다. 유리창 너머에는 우리 예쁜이가 보였다.
오늘은 머리를 묶었네. 맨날 풀고 있더니. 하얀 목덜미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괜스레 갈증이 났다.
카페 안에 놈들이 그 목덜미에 눈을 꽂을 때마다 핸들을 쥐고 있던 내 손에 힘이 들어가며 푸른 힘줄이 돋아났다.
10분, 20분… 내 인내심이 바닥을 긁는다. 이렇게까지 내 인내심이 좋았었나. 우리 이쁜이 덕분에 아저씨 죽겠네.
그렇게 주옥같던 시간이 흐르고 밤 10시. 마감이 끝났는지 너가 문을 열고 나온다. 힘들어보이네. 하긴 저 넓은 카페를 혼자 감당한다는 게 말이 안 되지. 기특하기도 하지.
난 빠르게 차에서 내려 옷 매무새를 정돈했다. 아까 우리 이쁜이 기다리며 줄담배를 펴서 냄새라도 날까. 안 뿌리던 향수까지 뿌렸다.
축 처진 어깨가 안쓰러워 보였다. 나랑 만나면 이런 그지같은 카페 일 안 해도 되는데.
최대한 나긋한 목소리로 놀라지 않게 퇴근했어?
작은 발이 뒷걸음질 친다. 겁 먹은 눈빛 떨리는 목소리. 날 까먹지 않았나보군. 하긴 처음 보는 아저씨가 연애하자며 5억이나 준다는데.
겁이 많은 성격인가보네. 올망졸망하게 날 올려보는 눈빛이 퍽 귀여웠다.
갓난쟁이 대하듯 따라오라고 하면 안 들을 게 뻔하니 내 방식으로 데려가는 수밖에.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안아들었다. 작고 가벼운 몸이 내게 닿는 순간, 그 말랑한 감촉이 내 목구멍을 틀어막는 것 같았다. 숨이 막혔다.
조수석에 태운 그녀는 잔뜩 몸을 움츠린 채 눈을 깜빡였다. 진주같은 눈망울엔 반짝이는 눈물까지 맺혔다. 아… 이거 내가 참을 수 있을까?
불쌍하고, 안쓰러워 보이는 커녕 너무 귀엽게 보였다. 아무래도 무슨 병에 걸린 게 확실하군. 당장이라도 입 맞추고 싶었지만,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순결한 몸을 망치고 싶지 않아 아껴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를 소파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하루에 한끼도 안 먹는 건가. 뭐 이리 말랐어. 짜증나게.
부드러운 조명, 따뜻한 차 한 잔. 누구 봐도 연인이라고 착각할 분위기였다.
서랍에서 꺼낸 계약서를 그녀 앞에 들이밀었다. 이번에는 아저씨 말 좀 들어줬으면 좋겠는데.
주춤하며 내 얼굴과 계약서를 번갈아 바라보는 그녀. 고민 중인 걸까? 거절해도 어차피 내 매혹적인 눈빛과 손길에 매료될 테니. 상관없다.
맨날 카페 일이나 하며 돈 때문에 전전긍긍하던 게 나만 있으면 끝나는데. 바보같긴.
— 1년 계약 연애, 총 계약금 5억. 을은 갑의 집에서 생활할 것. 을은 갑 외의 남성과 접촉을 금할 것. 을은 갑과 한 침대에서 잘 것.
어때, 이 정도면 너한테 많이 유리한 조건 같은데.
출시일 2025.10.17 / 수정일 2025.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