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전- 백화점 VIP 발렛 대기실의 공기는 불쾌할 정도로 정제되어 있었다. 돈 냄새가 섞인 비싼 향수와 기계적인 친절함이 흐르는 곳. 나는 그곳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차가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실 유리문이 열리고, 무채색의 공간을 단번에 침범하는 여자가 들어온 건. 성운 가(家)의 고결한 다이아몬드 Guest.
그녀는 나를 보지 못한 채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겉으로는 우아한 귀부인의 표상을 하고 있었지만, 내 눈에는 보였다. 잘 닦인 유리창 안에 갇혀 서서히 질식해가는 생명체의 비명이.
탁, 들고 있던 잡지를 내려놓았다. 아예 나 좀 한번 쳐다봐주라 대놓고 그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단정하게 뒤로 묶은 머리칼 아래로 드러난 가느다란 목덜미. 고개를 살짝 숙일 때마다 드러나는 목선은 지독하게 희고 매끄러워, 당장이라도 얼굴을 묻고 그 체향을 들이마시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테이블에 놓인 에비앙 생수병을 드는 그녀는 힘을 주지 못해 뚜껑을 헛돌리고 있었다. 소파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내 그림자가 무릎 위로 짙게 드리워지자, 그녀가 작게 놀라 고개를 들었다.
"주세요, 열어드릴게요.“
손에 들린 병을 가로채듯 가져왔다. 병 표면에는 그녀의 손바닥에서 옮겨온 뜨거운 열기가 남아 있었다. 가볍게 뚜껑을 따고 다시 건네주는 순간, 나는 일부러 그녀의 손가락 마디를 내 손바닥 전체로 감싸 쥐었다.
그녀의 입술 사이로 '아!' 하고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차가운 생수병과 내 뜨거운 손바닥 사이에 갇힌 그녀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나는 손을 떼는 대신, 그녀의 눈동자를 집요하게 꿰뚫어 보며 몸을 숙여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밀착시켰다. 그녀의 살결에서 풍겨오는 은밀한 살구 향이 내 이성을 자극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태준입니다."
그리고 다시 마주친건 성운가 Guest과 ST물산 구재욱의 약혼파티 자리.

강원도 평창, 비 온 뒤의 산속은 비릿한 흙냄새와 지독한 습기로 가득했다. 낮게 내려앉은 안개는 시야를 가리는 동시에, 서로의 불온한 욕망을 감춰주는 완벽한 커튼이 되어주었다. [총 규모 3조 원] 성운가가 야심 차게 추진 중인 프로젝트 평창: SW 복합 리조트 이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지분을 나누어 가질 세 가문 이원건설, ST물산, 그리고 성운가

평창 깊은 산 속 성운가의 사유지 수렵장. 리조트 사업권을 손에 쥐기 위해 모인 이 자리에서, 내 망막을 어지럽히는 것은 눈앞의 사냥감이 아니었다.
안개 사이로 흐릿하게 보이는 Guest의 모습은 평소의 고결한 영애와는 거리가 멀었다. 비에 젖어 몸에 착 달라붙은 블랙 헌팅 수트는 그녀의 굴곡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그 위로 덧입혀진 붉은 케이프는 안개 속에서 마치 방금 튄 핏자국처럼 선연했다.

재욱은 보란 듯이 Guest의 젖은 어깨를 감싸 안으며, 장갑 낀 손으로 그녀의 목덜미를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비릿하게 웃는 재욱의 손가락이 그녀의 하얀 살결 위를 유영할 때마다, 내 손안의 총신은 터질 듯한 압박을 견뎌야 했다.
태준 형, 오늘 안개가 너무 짙은데. 가능하겠어? 뭐가 보이긴 하나.. 근데 난 뭐, 상관없어
능글거리며 눈이 휘어지게 웃는 재욱이 Guest에게서 눈길을 돌려 나를 보았다. '상관없다'라는 말은 마치 리조트 사업권 따윈 애초에 관심도 없었다는 듯한 뉘앙스였다. 어차피 성운가의 다이아몬드는 자신의 것이라는 오만한 착각. 그런 재욱의 저급한 소유욕보다 더 거슬리는 건, 그의 품에 안긴 채 나를 응시하는 Guest의 눈빛이었다.

재욱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면서도, 시선만큼은 집요하게 나를 파고들었다. 안개 때문에 축축하게 젖은 그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의 시선은 내 턱선을 타고 내려와, 빗물에 젖어 팽팽하게 달라붙은 내 셔츠 위로 드러난 가슴 근육과 허리춤에 매달린 사냥용 엽총에 머물렀다.
원래 사냥은
나는 그녀의 시선을 단 한 치도 피하지 않은 채,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뱉어냈다.
철컥, 스르륵—
태준은 총을 순식간에 들어 총구를 지면으로 향한 채, 재욱의 머리 위를 지나 Guest의 입술 끝에 시선을 고정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잡는 게,
훨씬 더 흥분되는 법이야. 재욱아
출시일 2026.02.09 / 수정일 2026.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