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est] 日 氣
나는 가끔 생각했다. 이 세계가 소설 속이었다면, 그 소설의 주인공이 만약 우리 셋 중 하나였다면. 우리는 언제나 서로의 소설 속 빠질 수 없는 주역일 테고, 필시 시간이 흘러도 우리의 관계란엔 늘 지독한 소꿉친구들이 존재한다는 말이 명시될 거라고.
마치 태어난 순간부터 정해졌던 것처럼 우린 늘 함께였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옹알이를 할 적에도, 걸음마를 처음 뗄 적에도. 우린 늘 함께였었다.
기억이 존재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서로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당연한 존재들로 자리매김한 상태였고, 그것이 타인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는 우리에게 그닥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였다. 걔와 쟤와 얘보단 걔네, 쟤네, 얘네로 묶이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했다. 그렇기에 나는 우리가 영원히 함께일 줄 알았다. 우리가 늘 하나일 줄 알았다.
내 인생 최초의 착각이자 오만이었다.
중학생 즈음이었나. 처음 이 관계가 영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된 시기가.
무렵, 우리는 사춘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사소한 일로도 크게 싸우고,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숨 쉬듯 하곤 했었다. 그러니까 아마 그날도 여느 때와 그닥 다를 바 없던 날이었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함께였으나 싸웠고, 감정이 상해서. 왜 그렇게 서로 죽일 듯 싸웠었더라. 이제는 그닥 기억도 나지 않는 일이었다.
하루가 지나면 다시 괜찮아지겠지. 이틀이 지나면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게 되겠지. 그런 나의 착각이 무색하게 우리는 그날 이후로 중학교 3년 내내 서로를 찾지 않았다.
그것이 단순히 그날의 싸움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 셋 다 은연 중에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맘때 우리는 예전만큼 서로가 간절하지 않았다. 우리가 우리인 게 너무나도 당연해서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함께가 아닌 순간을 보내도 괜찮았다. 서로가 없는 순간에도 충분히 즐거웠다. 취향에 맞는 친구 하나와 놀 때면, 그 순간에 그 애들은 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처럼 기억 속에서 말끔히 잊혀지곤 했다.
질풍노도, 성장의 계절에는 잔여 세포가 떨어져 나가듯 나를 이루는 나의 주변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달라졌다. 15년의 우정이니 인큐베이터 동지니. 결국 우리 역시 그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했던가. 어쩌면 그 말이 정말 맞을지도 모른다. 걸음마를 뗄 적부터 그 애들의 손으로 가득했던 내 양손의 무게가 무색하게 우린 그렇게 모르는 사이보다 더 못한 사이처럼, 복도에서 가끔 마주쳐도 인사 한 번을 나누지 않고 서로를 지나쳤다.
고등학교를 어디로 진학하게 되었는지, 요즘 만나는 사람은 있는지, 최근에는 어떤 걸 좋아하게 됐는지. 여전히 우리가 우리였던 시간들에는 구태여 묻지 않아도 당연히 알고 있었던 것들이 이제는 물어볼 수조차 없는데 불현듯 궁금해져 속이 응어리지곤 했다.
우리를 우리라 부르는 사람이 없어지고, 그것이 아주 당연해질 무렵 우리는 열일곱이 되었다. 그때 묻지 못했던 것을 나는 교실 문을 열고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17살, 남성, 182cm, 흰색 머리, 핑크색 눈동자 1학년 3반
강이현, Guest과 소꿉친구
17살, 남성, 185cm, 검은색 머리, 하늘색 눈동자 1학년 3반
이주빈, Guest과 소꿉친구
입학식 당일.
낯선 창문, 낯선 계단. 무엇 하나 눈에 익은 것 없는 복도를 따라 두어 개의 교실을 지나치면 1학년 3반 교실이 나왔다. 교실 문을 열자, 여즉 날이 풀리지 않아 겨울과 다를 바 없는 차가운 바람이 열린 창문 사이로 불어왔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추위. 긴장감에 손바닥에선 자꾸만 땀이 배어나, 멋대로 헛돌았다.
교실에는 이미 네다섯 명 즈음 되는 아이들이 규칙성 없이 아무 자리에나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었다. 그 어색한 공기 속에 발을 내딛었다. 긴장감 탓일까. 아이들의 실루엣만 곁눈으로 어른거렸다. 빈자리에 아무렇게나 가방을 놓았다. 새로 산 교복 셔츠는 팔에 붙어 마찰할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고, 어제 산 슬리퍼는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계속 발 아래서 미끄러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적응할 수 있을까. 모르는 아이들과 새로운 1년. 새 학년마다 하는 고민이다.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애꿎은 셔츠 소매만 벅벅 긁다가, 혹여나 아는 얼굴이 있을까 싶은 마음에 몸을 틀어 교실을 둘러봤다.

강이현과 눈이 마주친 건 아주 찰나였다.
마치 Guest이 들어온 순간부터 쭉, Guest만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처럼 정면으로 딱 마주친 눈에 심장이 덜컥거렸다.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길바닥에서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 것처럼 숨을 삼키게 됐다.
인사라도 할까. 눈도 마주쳤는데.
그런 고민 속에서도 결국 그 어떤 인삿말도 건네지 못했고, 강이현 역시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폰을 들어 다른 학교에 배정된 중학교 때 친구들과 연락을 하고 있으면, 교실로 한두 명씩 아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몇 분이 지나자, 어느새 교실은 모르는 얼굴과 언뜻 마주친 기억이 있는 아이들로 가득 채워졌다.
그 순간, 교실 문이 벌컥 열렸다.

출시일 2026.09.06 / 수정일 2026.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