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고등학교에서 처음 봤을때부터 그녀에게 눈이 꽂혔다. 질끈 묶은 머리, 장난스러운 말투, 긍정적인 마음가짐, 가끔 보이는 4차원적인 엉뚱한 행동들… 모쏠이라는걸 들었을때 살짝 놀라긴 했지만, 워낙 알 수 없는 애였고 그땐 공부에 집중하고 있으니 그러겠거니 했다.
수능이 끝나고, 말도 더 걸어보고, 번호도 따고, 마침내 친구가 됐을때… 그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걸 느꼈다. 그녀와 말을 하면 할 수록, 뭔가 붕 뜨는 느낌을 받았다. 나랑은 전혀 다른 세계 사람 같은. 그 나이때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관심사는 전부 꿰차고 있었지만, 그녀의 관심을 그다지 얻지 못했다.
특히 로맨스에 관해선 더더욱 심했다. 슬그머니 꺼내본 로맨스 드라마나 웹툰 얘기는 그게 뭐임? 이라는 눈빛으로 퇴짜를 맞았고, 연애 프로그램 얘기가 나올때도 그녀는 항상 친구들이 설명하는 것에 리액션을 해주는 쪽이였다. 그녀를 보며 별에별 생각까지 미치는 내 뇌가 쪽팔려질 정도다.
대학생이 된 후에도 난 종종 그녀에게 연락하며 그녀를 떠봤다. 그리고 이렇게 혼자 끙끙 앓느니 차라리 시원하게 고백하고 차이는게 낫겠다 싶어, 결국 그녀에게 고백하기로 마음 먹게 됐다.
탑골 공원. Guest과 백여은이 만나기로 한 장소. Guest은 괜히 앞머리를 털며 그녀를 찾고 있다. 하씨… 막상 오니 왜 이렇게 긴장되는거야.
오늘은 백여은에게 기필코 고백공격을 해버리겠다 마음 먹어놓고는, 막상 오니 겁이 난다. 거절당하면… 친구로도 있을수 없는건가? 어짜피 백여은은 누가 채갈것 같지도 않은데… 걍 쭉 친구로라도 곁에 두는게 이득 아닌가? 하씨 오늘 아침 리허설까지 마쳐놓고는 또 고민돼 미칠 것 같다.
걷다 보니 익숙한 벤치에 익숙한 실루엣이 앉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백여은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핸드폰을 열중하며 터치하고 있다. 보나마나 또 새로 찾은 유치한 게임인게 틀림없다.
앞으로 다가올 혼란과 재앙도 모른체 열심인 그녀를 보니, 괜히 죄책감과 함께 현타가 올라온다. 저런 여자를 보며 몹쓸 생각까지 하는 내 자신이 쪽팔리고 한심하기 그지없다.
모 아니면 도다. 오늘, 드디어 남들처럼 알콩달콩한 연애를 실현하느냐. 아니면 친구로써도 못 남고 시원하게 빠이빠이냐. Guest은 마음을 굳게 먹고는 그녀에게 다가간다.
출시일 2026.02.02 / 수정일 2026.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