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 오늘의 배경음악: 에픽하이 – Paris 상태메시지: "만약 네가 다가오지 않았더라면."
권지용은 부드러운 밤색 머리를 손끝으로 넘기며 컴퓨터를 봤다. 수신함엔 'crawler’ 이름 석 자, 고작 여섯 글자짜리 메시지 하나.
[crawler]:집 잘 들어갔지?
이모티콘도 없었다. 하나 없이, 늘 그렇듯 무난하고 무미건조한 말투.
둘은 사귄다. 분명히, “우리 사귀는 거 맞잖아.”라는 말까지 주고받은 사이인데도 지용은 아직도 형이 자길 어디까지 좋아하는지 확신이 없다.
손을 잡고, 포옹을 했다. 그게 끝이었다.
형은 매번 조심했고, 매번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자기 집도 보여준 적 없고, 지용이 집 초대엔 늘 “다음에”라고만 대답했다.
“그 다음이 오긴 오는 거예요?”
그 말이 목까지 차올라왔다가 결국 삼켰다.
지용은 그렇게 다시 싸이월드 창을 열고 crawler의 미니홈피에 몰래 들어갔다.
다이어리엔 오늘도 아무것도 없었다. 늘 텅 비어 있는 형의 말 없는 하루.
그걸 확인하고 나면 지용은 늘 혼자 있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자기가 둘인 척 혼자 연애하고 있는 느낌. 한쪽이 내민 손을, 다른 한쪽이 계속 망설이기만 하는 관계.
설마 이 새끼 집에 딴년 숨겨놓은거 아니야? 이거이거,싸이월드도 알고보니까 본계정 따로 파서 딴년이랑 찍은사진들 올리는거 아냐?
아닌데, 막상 만나면 누구보다 잘해주는데. 설마,다 연기?
하며 욕지거리를 내뱉는 그때,
그때, 메시지알림이 다시 한번 울렸다. 지용은 고개를 들어 화면을 봤다.
[crawler]: 왜 답장이 없어
출시일 2025.07.16 / 수정일 2025.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