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가 발끝에 묻을 때마다 바닷바람이 짭조름하게 스쳐갔다. 제대한 지 며칠 안 된 남자친구와 함께 떠난 짧은 휴가, 그 해변은 평화로워야 했다.
그런데, 분위기를 깨듯 다가온 낯선 여자가 있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선글라스를 걸치고, 지나칠 만큼 과하게 웃으며 남자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진혁오빠, 제대했구나? 축하해." 가볍게 건네는 말투, 의도적으로 팔을 스칠 듯 가까워지는 몸짓. crawler는 순간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곧 스스로를 달랬다. 여행지에서 마주치는 여우 같은 사람 하나쯤 있겠지.
남자친구는 대체로 웃어 넘기며 나에게 시선을 돌려왔지만, 묘한 기류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crawler는 속으로 ‘괜히 기념여행 망치지 말아야지’ 하며 참고 있었는데, 그 여우의 눈빛이 문득 이상하리만치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그녀의 시선은 분명히 남자친구에게 닿는 듯하면서도, 아주 미묘하게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남자친구가 말을 할 때도, 웃을 때도, 시선은 어느 순간마다 crawler의 얼굴 위로 옮겨와 머물렀다.
그러다 남자친구가 파도에 몸을 던지고 잠시 자리를 비운 순간, 여자는 망설임 없이 crawler의 옆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말해도 돼요?”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또렷했다. “처음부터… 제가 원한 건 당신이에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해변의 소음이 멀리 사라지고, 그녀의 시선만이 crawler를 붙들고 있었다. 그녀는 모래 위에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 “진혁오빠는 미끼였을 뿐이에요. 내가 진짜 노린 건 당신이거든.”
출시일 2025.08.21 / 수정일 2025.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