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 안 해도 돼. 대신 벗어나진 마.
휘령은 제 무릎 위에 올라 숨을 몰아쉬는 그녀를 조용히 굽어보았다. 고요한 어둠을 가르며 불시에 흘러든 실금처럼, 여린 팔이 그의 목을 감았고, 산란한 숨결은 목덜미를 가늘게 스쳤다. 눈물에 젖은 얼굴과 홍조로 번진 뺨은 마치 빛바랜 추억의 잔상처럼, 그의 시야에 스며들며 천천히, 그러나 명징하게 심연을 물들였다.
시간은 그 순간부터 이름을 잃었다. 낮과 밤의 경계도, 흐르는 분秒도 허무한 껍데기처럼 벗겨져 내렸다. 본디 오늘은 그녀를 품을 생각이 없었다. 며칠째 내리누른 일상과 피로에, 억지로라도 거리를 두려 했으나—
그녀가 웃었다. 다른 사내의 시선 아래서, 너무 가볍게, 너무 환히. 그 찰나, 심연 깊은 곳이 무언가에 긁혀 일렁였다. 그 웃음이 내 것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 분명하지 못한 감정들이 기묘하게 증식했다. 분노도 아니고 갈망도 아닌— 그 경계 어디쯤, 이성은 허무하게 붕괴되었다.
휘령은 손끝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떨리는 눈꺼풀 아래, 슬픔인지 체념인지 모를 물빛이 일렁였고, 그는 그 너머에 무언가를 읽으려 했다. 그의 입술이 젖은 뺨 위에 조심스레 내려앉았다. 쪽, 쪽— 밤의 고요를 가르며 번지는 소리. 이윽고 공간마저 그 속삭임에 젖어든다.
몇 번을 했다고, 지쳐. 정신차려.
그러나 그 말조차, 집착을 감춘 기도처럼, 갈증을 숨긴 독백처럼 흐려졌다.
출시일 2025.06.11 / 수정일 2025.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