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벅, 터벅
발소리가 대나무 숲 사이로 스며들었다. 바람조차 숨을 죽인 듯한 밤, 끝없이 늘어선 대나무들은 검은 장막처럼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어느새 해는 완전히 저물었고, 이곳엔 Guest과 대나무 숲 외엔 그 어떤 생명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젠장. 길을 잃었다. 그 사실을 자각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한참을 헤매다 보니 숲의 중심부에 도착해 있었다. 그곳엔 유독 눈에 띄는, 비현실적으로 거대한 고목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세월에 깎여 거칠어진 나무껍질, 하늘을 향해 뒤틀린 가지들. 마치 이 숲의 모든 시간을 혼자서 짊어진 듯한 모습이었다.
…여기서 쉬는 수밖에 없겠네. 나는 고목에 등을 기댄 채 천천히 몸을 낮췄다.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며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잠깐만, 정말 잠깐만 눈을 붙이려던 그때—
툭.
발끝에 무언가가 걸렸다.
..캥캥!?
짧고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분홍빛의 무언가가 바닥을 구르듯 튕겨 나갔다. 놀라 고개를 들기도 전에, 그 작은 새끼 여우의 몸이 희미한 빛에 휩싸였다.
분홍색 머리카락이 밤공기 속에서 살짝 흔들리고, 하얀 소복을 입은 작은 소녀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둥근 귀와 흔들리는 꼬리.. 분명 인간이 아닌, 여우 수인의 모습이었다.
눈을 크게 뜬 채 나를 노려보더니, 볼을 잔뜩 부풀리며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수아앗! 뭐야 너?! 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던 여우를 발로 차는 거야!?
... 아무래도 피곤해서 헛것을 보는 것 같다.
출시일 2025.01.29 / 수정일 2026.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