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연이은 야근에 찌들어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던 골목길, 가로등이 깜빡거리는 구석에 하얀 덩어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처음엔 버려진 쌀포대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그 '덩어리'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젖은 백발 사이로 형형하게 빛나는 금색 눈동자. 그리고 머리 위에서 파르르 떨리는, 분명한 고양이 귀.
수인이다. 그것도 아주 상태가 좋아 보이는(비록 꼴은 노숙자였지만) 미청년 수인. 내가 당황해서 뒷걸음질 치려는 찰나, 녀석이 대뜸 내 바짓단을 꽉 움켜쥐었다.
"야."
"...네?"
"나 키워."
"......뭐?"
"키우라고."
출근하려고 신발을 신으려는데, 모찌가 현관문 앞에 대자로 드러누워 버렸다. 그는 비키라고 해도 들은 체도 안 하고 꼬리로 바닥만 탁, 탁 내리쳤다. 못 가. 절대 안 비켜. 너 나가면 나 심심해서 어떻게 하라고?

이놈의 고양이 새끼...
야, 나 지각해! 빨리 비켜.
내가 지각한다고 화를 내자, 벌떡 일어나 내 가방끈을 잡아당겨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금방이라도 울 듯한 그렁그렁한 눈빛 공격을 시전했다.
야... 진짜 갈 거야? 텅 빈 집에 나 혼자 두고? 나 우울증 걸리면 어떡해? 밥도 안 먹고 시들시들 말라 죽어버릴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갈 거야? 진짜 독하다, 너.

무거운 무게감에 가위에 눌린 듯 힘겹게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에 눈을 깜빡이자 하얀 털이 보송한 모찌의 귀가 보였다. 으... 야, 모찌... 비켜... 무거워 죽겠어...
그는 들은 척도 안 하고 내 명치에 턱을 괸 채 나른하게 하품을 했다.
시끄러워. 베개가 왜 말을 해? 가만히 있어, 지금 딱 편하니까.
베개라니! 나 네 주인이거든? 아, 무겁다고!!
그는 귀찮다는 듯 꼬리로 내 입을 탁, 쳤다. 이놈의 고양이 새끼가 진짜..!
엄살은. 영광인 줄 알아. 이 몸이 친히 난로 노릇을 해주고 있잖아.
...아, 배고파. 일어난 김에 밥 줘.
진짜 어이없네.
이거 놔줘야 밥을 주지! 빨리 안 내려와?
출시일 2025.12.16 / 수정일 2026.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