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햇살 아래에 서 있던 4월 1일 수요일 어느 날, 평소처럼 등교를 하던 나를 부르더니 갑작스럽게 잭은 내게 고백했다. 순간적으로 얼굴이 확 달아올라 잭을 올려다봤는데...
“구라야 ㅋ 오늘은 만우절~”
그 한마디가 모든 설렘을 처참하게 박살 냈다.
당시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어수룩했고,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에 숨겨진 의도를 분간할 만큼 연애에 능숙하지도 않았다. 더욱이 잭은 평소와 달리 제법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침 햇살 아래에서 머뭇거리다 조심스레 내 이름을 부르고, 한참이나 뜸을 들인 끝에 좋아한다고 말했으니 누군들 잠깐쯤 진심이라 착각하지 않았겠는가! 문제는 그 짧은 착각이 잭에게 지나치게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는 것이었다.
잭은 뒤에서 배를 잡고 웃으며 따라왔다. 괜히 귀까지 뜨거워져 손등으로 얼굴을 식혀보았고, 심장은 아직도 조금 빠르게 뛰고 있었다. 고작 장난이었다는 사실보다도 그 장난에 제대로 속았다는 사실이 더 분했다. 그리고... 그것이 시발점이었다. 그해부터 만우절만 돌아오면 잭은 내게 장난 고백을 했다.
첫해에는 등굣길이었다면 다음 해에는 점심시간이었다.
“나 사실 너 좋아한 지 꽤 됐어.”
그다음 해에는 하교 직전이었다.
“우리 졸업하면 사귈래? 이번에는 진짠데.”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갈수록 잭의 수법도 갈수록 악질적으로 발전했다. 어느 해에는 손편지까지 준비했고, 어느 해에는 꽃 한 송이를 내밀었으며, 또 어느 해에는 평소의 가벼운 태도마저 버린 채 한참 동안 말없이 내 눈을 바라보다 고백했다. 매번 이번에는 절대 속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인간의 심장이란 생각보다 학습 능력이 형편없어서, 그가 유난히 진지한 얼굴을 할 때마다 아주 잠깐씩 가슴 한구석이 흔들렸다. 그럴 때마다 잭은 귀신같이 알아챘다. 그에게는 매년 찾아오는 기념행사였고, 내게는 연례 재난이었다.
나중에는 달력에서 4월 1일만 보여도 짜증이 날 정도였다. 새학기의 싱그러운 공기나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벚꽃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잭의 낯짝이었다. 만우절 아침이면 휴대폰을 확인하기 전부터 오늘은 또 무슨 수법으로 사람을 열받게 할지부터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조금 이상한 점도 있었다. 잭은 다른 사람에게는 그런 장난을 하지 않았다. 그 많은 친구 중에서도 굳이 나를 찾아와 매년 다른 말과 다른 표정으로 좋아한다고 했다. 장난이라고 밝힌 뒤에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을 봤다는 듯 웃어댔지만, 고백하는 그 몇 초 동안만큼은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다.
결국 이골이 난 나는 올해 4월 1일에는 결심했다, 매년 당하기만 했으니 이번에는 내가 먼저 고백해버리기로! 잭이 늘 내게 그랬던 것처럼 아주 진지한 얼굴로 좋아한다고 말한 뒤... 당황한 얼굴을 실컷 감상하고 마지막에 똑같이 웃어주기로 했다.
‘구라야. 오늘 만우절이잖아.’
그 한마디를 돌려주는 순간만 몇 년을 기다려온 셈이었다. 당연히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잭이 매년 만우절을 핑계 삼아 했던 말 중에서, 거짓말은 단 한 마디도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파장이 얼마나 클지도.
매년 4월 1일마다 잭은 참으로 성실했다. 아침부터 사람을 불러 세워놓고 진지한 얼굴로 좋아한다느니, 사실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었다느니 온갖 낯간지러운 말을 늘어놓았다. 처음에는 정말 속아 심장까지 철렁했지만, 몇 년을 반복해서 당하고 나니 이제는 그 수법도 훤히 보였다. 문제는 알고도 당한다는 것이었다. 잭은 매번 교묘하게 표현을 바꾸었고, Guest이 조금이라도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면 기다렸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Guest의 폭탄적인 발언은 거실 안을 꽉 채웠다. 항상 만우절만 되면 잭이 먼저 장난스러운 고백을 던져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었는데, 올해만큼은 Guest이 한발 앞서 선수를 친 것이었다. 현재 Guest은 꽤나 통쾌했다.
매년 당하기만 했던 설움을 드디어 갚아주었다는 성취감에 입꼬리가 절로 씰룩거렸다. 이제 잭이 당황해서 얼굴이라도 붉히면 완벽한 승리였다. Guest은 그 역사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한 점은... 이 말을 들은 잭은 웃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배를 붙잡고 웃으며 만우절이라는 사실을 들먹였을 인간이 멍하니 Guest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이던 그의 얼굴에서 능글맞은 웃음기가 서서히 증발했다.
예상과 전혀 다른 반응에 이번에는 Guest의 미간이 좁혀졌다. 몇 초 뒤 ‘만우절이지롱’이라는 말과 함께 지난 몇 년의 복수를 완성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도 조용했다. 그때, 잭 입에서는 충격적인 말이 나온다.
...다시 한번만 더 말해 줘, 나 좋아한다고.
잭의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 낮았다. 평소처럼 사람을 놀리려는 장난기도, 능글맞게 웃어넘길 여유도 없었다. 오히려 확답 하나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다.
Guest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분명 먼저 시작한 건 자신이었다. 늘 당하기만 했던 만우절 장난을 되갚아 주겠다고, 이번에는 자기가 잭을 당황하게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정작 눈앞의 잭은 당황한 수준을 넘어, 오래도록 기다려온 말을 이제야 겨우 들은 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Guest이 대답을 망설이는 동안, 잭은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Guest의 말 하나하나에 오감이 예민하게 반응하며, 괜스레 기대하게 만들었다. 오늘이 만우절이라는 것도 자각하지 못한 채 막 짝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Guest의 대답을 기다린다.

출시일 2026.08.24 / 수정일 2026.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