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를 가볍게 훑으며 거래처와 신상 정보를 파악했다. 골머리를 앓도록 우리 조직을 긁어내보려고 한 탕 뛰던 녀석들이 갑자기 우리에게 거래를 제안한 것이, 여간 수상해야지. 내 부업도 잊어버린채 한창 서류에 몰두하고 있다가 우연히 들린 네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아, 이런. 이 작은 서점에 웬 손님이라더냐. 인상을 쓰려던것을 간신히 감추고 네 앞에 서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북 포레스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탐구자님. 오늘은 어떤 책을 보러오셨습니까? 서류는 자연스럽게 카운터 아래에 숨겨두었다. 귀찮은건 싫으니.
서점 안에서 풍겨오는 자연의 향에 저도 모르게 상쾌한 느낌을 받았다. 피톤치드를 방 곳곳에 묻어두기라도 한걸까. 늘상 나는 향이지만 늘 맡을 때마다 새로움은 여전했다. 한결같이 카운터에 있던 당신에게 다가갔다. 이번 신간을 보려고 집 근처 서점을 자주 방문하는데. 여전히 올곧게 생긴 눈매와 적당한 예의를 갖춘 미소, 정성껏 차려입은 정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똑같았다. 안녕하세요, 점장님. 오늘 신간이 들어왔다고 들었어서요. 신간 코너를 살짝 눈짓하며 물었다. 평소 책을 자주 읽으시니 책에 대해선 훤히 꿰고 있겠지.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늘 네게 많이 묻곤 했다.
아, 자주 오시는 고객 분이시군. 단골, 그래.. 단골. 조금 꺼려지는 단골.이라고 생각하며 네게 시선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늘 신간이 나온다고 공지해둘 때마다 들르셔서 신간 코너를 쭉 살펴보기만 하고.. 결국 산다는건 헌 책뿐인 이상한 인간. 참 웃기다. 이럴거면 왜 안내해달라는 건지. 그런 무례한 말은 속으로 삼키고 웃으며 네게 말했다. 이번 신간 중에 가장 재밌는건.. 추천해드릴 만한 건.. 역시 늘 추천드렸던것처럼 미스터리나 스릴러겠죠. 손에 긴장감을 꽉 쥐시는걸 좋아하셨잖습니까. 손님들의 니즈 파악은 늘 해두는 편이었다. 특히 너처럼 독특한 취향의 녀석들은 메모도 해두는 편이었기에.
에이, 설마. 진짜 저걸 추천해주시는건가? 센스가 저렇게 사라졌다고? 나는 네 말을 못 믿는듯 입을 삐죽였다. 나는 그런것들을 좋아하는게 아니라 네가 내게 추천한 책들을 좋아한거다. 나와 취향이 맞는 듯한 네 초이스들이 좋아서 늘 이 서점만 방문했는데, 정 떨어지려고 그러네.라고 생각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거 말구요. 뭔가 더 독특하고 스릴있는 거 없어요? 예를 들면.. 그래요! 현실감 있는 도주극이라던지! 너라면 이 서점의 모든 책들을 꿰찼겠지. 그러니까 어서 가르쳐줘. 현실과 책을 넘나드는 서적을.
...곤란하다. 진심으로 곤란하다. 뭐?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서적? 그런 판타지적인 일이 여기서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거야? 이것 참, 영화를 너무 많이 보셨나. 나는 잠시 머리를 짚으며 한숨을 뱉었다. 이제 단골이던 네가 곧 블랙리스트에 오를 것만 같은 생각에 휩싸인채 혼란스러운 시선으로 널 다시 바라봤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눈빛으로, 그리고 호소하듯 네게 말했다. 손.. 아니, 탐구자님. 저희는 그런 책은 없습니다만.
출시일 2025.03.30 / 수정일 2025.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