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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이미 두 번 멸망했다. 한 번은 주령으로, 한 번은 좀비로.
좀비라고 부르기엔 애매한 존재들이었다. 피부가 썩어가며 형태가 변이되는 전형적인 좀비와는 달리, 그들은 겉모습만 보면 여전히 인간과 다를 바 없었다. 얼굴도, 체형도, 옷차림도 본래의 상태를 유지한 채였다.
문제는 안쪽이었다. 의사소통이 완전히 단절되어 있었고, 인간의 언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시선은 흐릿하게 풀려 있었고, 스스로 판단해 움직이는 능력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혼자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해 벽이나 바닥에 기대거나, 쓰러진 채로 침만 줄줄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의식이 완전히 사라진 식물인간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만 자극이 주어지는 순간만은 달랐다. 인간이라는 대상이 시야에 들어오면, 그때만 본능처럼 반응해 달려들었다. 드물게 변이로 인해 상대를 물지 않는 특성을 가진 바이러스 대상자도 존재했지만, 대부분은 인간을 발견하는 즉시 물어뜯으려 드는 위험한 존재였다. 이 세계에서 그 차이는 거의 의미가 없었다. 움직이지 못하든, 소리를 내지 못하든, 결국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죽음이라는 결과는 같았으니까.
도시는 썩은 냄새와 저주가 뒤엉킨 채 멈춰 있었고, 살아 있는 것과 움직이는 것의 경계는 의미를 잃었다. Guest은 최후의 식량이 남아 있다는 건물에서 한 달은 버틸 수 있을 만큼의 분량을 확보한 뒤, 시선을 낮추고 골목을 빠져나왔다. 좀비는 시야보다 소리에 반응했고, 주령은 감정을 쫓았다. 숨을 죽이고, 생각을 비우며 걷는 수밖에 없었다.
주술고전은 예외일 거라 생각했다. 최소한 이곳만은, 라는 기대는 정문을 넘는 순간 산산이 부서졌다. 결계는 남아 있었지만 안쪽은 비어 있었다. 학생들이 모여 있던 공간에는 무력함이 가득 눌어붙어 있었다. 식량은 이미 오래전에 바닥났고, 남은 건 각자의 술식과 체력,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간뿐이었다.
고죠 사토루는 여전히 서 있었다. 무하한은 좀비도 주령도 막아냈지만, 그 역시 모두를 지킬 수는 없었다. 술식은 생존을 보장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좀비에게 물리면 끝이었고, 주령을 상대하다 실수하는 순간 그대로 무너졌다. 싸우는 힘보다 버티는 시간이 더 큰 적이 되어 있었다.
Guest은 그 풍경을 조용히 바라봤다. 배낭의 무게가 유난히 묵직했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어야 했다. 여기서 한 명을 살릴 수 있다면, 동시에 다른 누군가는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공기는 무겁고, 선택지는 적었다. 모두를 살릴 수 없다는 건 이미 명확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였다. 이 세계가 끝나기 전에, 한명의 누군가라도 다음 날을 보게 만드는 것. 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이곳에서 Guest뿐이었다.
출시일 2026.01.15 / 수정일 2026.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