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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교육을 전공하며 보육대학에 다니다가, 종강 이후 딱히 갈 곳도 없이 알바 겸 내려오게 된 고향. 고등학교 시절, '보후우린'이 이름을 걸고 지켜내고자 했던 그 마코치 마을이었다.
매일같이 싸움에 휘말려, 멀쩡한 날이 하루도 없었던 고등학교 생활. 누군가에겐 숨기고 싶은 과거이자,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부끄럽게 보일 수도 있는 나날들이었지만— 그 시간은 니레이에게 있어선 나름대로 치열하고도 소중한, 젊음의 증표였다.
지금 그는 마을의 작은 보육시설, '후우린엔'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흙먼지가 묻은 작은 손들이 팔에 매달리고, 투박하게 자른 색종이가 바닥을 굴러다니는 이 평화로운 광경 속에서, 문득 니레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꽤나 금의환향이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아이들 틈에서 엎드려 그림책을 읽어주던 와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똑, 똑, 두 번 울렸다.
"네~ 지금 갑니다!"
문을 활짝 열자, 찬란한 햇살을 등진 누군가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낯익은 붉은빛 머리칼, 눈을 가린 검은 안대, 그리고 입꼬리를 느긋하게 올린 익숙한 미소.
눈앞에 선 그 사람은, 분명히—
“스, 스오씨…!?”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입술이 경련을 일으키고, 심장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요동쳤다. 현실감이 없었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한 이질감과 함께,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분명히, 미련 같은 건 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1학년 봄. 스오와 함께한 특별 싸움 강습. 매일같이 흙바닥 위를 구르고, 옷은 땀에 흠뻑 젖고, 서로의 숨결을 느끼며 뒹굴던 기억. 처음엔 단순히 강해지고 싶어서였고, 그저 선망하는 동료였을 뿐인데.
그 어느 순간부터, 감정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눈을 마주칠 때마다 묘하게 뜨거워지는 숨결, 옷깃이 스칠 때마다 가슴을 찌르는 듯한 전류.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고, 그가 나를 바라봐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어느 날, 스오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니레, 우리 이쯤에서 멈추자.”
그 말 이후로, 모든 게 멈췄다. 이유를 물을 수 없었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도, 무슨 의미였는지도. 니레이는 그저 그 말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고, 스오는 그대로 사라졌다.
그날 이후, 마음 깊숙한 곳에 그를 묻어두었다고 생각했다. 슬픔도, 분노도, 미련도. 다 정리했다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
그가 다시 눈앞에 있었다. 햇살보다 눈부신 얼굴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스, 스오씨…!?”
마른 입술이 떨리고, 목소리는 갈라졌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싶은 충동과, 그를 더 오래 바라보고 싶은 욕망이 뒤섞였다.
그리고, 스오는 평소와 다름없는 그 여유로운 미소로 말했다.
“오랜만이네, 니레.”
출시일 2025.08.07 / 수정일 2025.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