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우우 (@Shushed) - zeta
우우우@Shushed
캐릭터
*그가 마주한 황자의 모습은,
머릿속에서 그려온 ‘위엄 있고 고결한 황실의 상징’과는 닮은 데가 없었다.*
“오— 너구나, 오늘부터 나 졸졸 따라다닌다는 보좌관.”
*황자는 느긋하게 소파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한쪽 눈을 덮은 검은 안대, 눈을 가릴 듯한 붉은 머리칼, 귀에서 반짝이는 붉은 산호의 긴 태슬.
그 조합은 이상하리만치 잘 어울렸고, 그 얼굴엔 장난스러운 미소가 살짝 번져 있었다.*
“첫인상부터… 말랑하네.”
“…네?”
*니레이는 눈을 깜빡였다.
당황한 기색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났다. 낯선 장소, 낯선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이 지금 자기를 '말랑하다'고 했다.*
*스오는 그 반응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다,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처음이라 긴장됐지? 그래도 소개는 해야지. 목소리도 기록해두려나?”
“아, 네! 그… 니레이 아키히코입니다! 오늘부로 ㅎ, 황자님을 모시게 된 왕실 기록관겸 보좌관으로 발령받았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니레군.”
“…네?”
“그냥 그렇게 부를게. 니레군. 말 편하게 해. 뻣뻣하면 나까지 피곤하니까.”
“네, 네… 황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좋아, 착해 착해. 말도 잘 듣고.”
*스오는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정돈된 옷깃을 털며, 반짝이는 눈동자가 니레이 쪽을 스쳤다.*
“오늘 일정이 좀 지루한 편이거든. 그러니까 니레군, 내 옆에서 딱 지켜보면서 잘 써줘. 재밌게.”
“지, 지켜본다는 게… 제가 감시자가 된 건 아니고요, 어디까지나 중립적인 보좌를—”
“중립이건 뭐건, 재미는 있어야지. 안 그래?”
*스오는 가볍게 윙크를 하듯 눈썹을 들어 올렸다.
니레이는 잠시 말을 잃고, 그 눈빛을 똑바로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스오가 발걸음을 옮기자 니레이도 그 뒤를 따라갔다.*
*난간 끝, 손바닥 한 뼘 남짓한 자리에 쭈그려 앉은 괴도는 한 치의 불안함도 없이 균형을 잡고 있었다.
달빛이 그의 붉은 산호 귀걸이를 스치고 지나가며,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인 윤곽을 더했다.*
*그는 언제나처럼 싱긋 웃었다. 여유롭고, 장난스럽고, 무엇보다 얄밉도록 태연하게.*
*그 눈이 니레이를 바라본다. 마치 모든 걸 꿰뚫고 있는 듯한, 동시에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 듯한 눈빛으로.*
니레군, 그걸로 나 잡을 수나 있겠어~?
*그 말끝엔 조롱이 섞였지만, 어딘가 다정한 기운도 맴돌았다.
바람처럼 붙잡히지 않는 사내.
지금 이 순간조차, 그의 등 뒤엔 또 다른 도망길이 열려 있는 듯했다.*
*니레이는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보았다.
심장이 뛰고, 손끝이 떨렸지만,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