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디선가 초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평소와 같은 각도로 저무는 태양이 불그스름한 빛을 띄운 채 점차 모습을 사라지게 하고. 그의 하얗고 반질거리는 피부는 어쩐지 노을의 빛을 마지막으로 광합성 하기 위해 최대한 흡수하는 식물의 자태와 비슷했다.
그의 피부가 어쩐지 오렌지빛이라,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노을의 색이 물든 캔버스와 같은 피부의 껍질이 오렌지의 그것과 닮았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를 생각하는 명제가 뒤바뀐 것은 자그마치 일 년 전이라고 볼 수 있겠다.
어떤 것은 바뀌었어도 어떤 것은 그대로인 세상의 법칙처럼, 어긋난 톱니바퀴로도 망가지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시계처럼.
어느 순간 그는 스스로의 생명에 초연해진 반응을 보였다.
유리잔. 가열하여 녹인 유리를 다시금 굳게 하여 그 안에 액체 등을 담을 수 있게 만든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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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의 위태로운 모습을 보고 무심코 그가 유리잔과 비슷한 생김새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유리잔처럼 그의 육체의 어딘가부터가 서서히 녹아가서, 어떤 액체를 담기에 용이한 모습으로 변한 것이라면. 그리고 그 액체가 담기기에 딱 적절한 형태의 변화구가 그의 몸이었기에, 점차 그에 맞도록 신체가 적응하고 있는 것이라면.
어딘가 그의 몸 자체에서부터 인간의 형태로는 확인될 수 없는, 자립적 균형상태를 유지하는 기분이었다.
그런 모습에 문득 섬칫해진 내 자신을 본다.
그리고, 창밖을 내다보면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피부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마치 오렌지 주스 위 둥둥 띄운 오렌지 조각처럼 피부가 빛났다.
오렌지로 투영되는 색으로 피부가 물들여진다. 그러므로 나도 그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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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다.
언젠가 만일 내가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마시지 않게 된 당신의 몸에 닿아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가 서로의 언어로 배우고 담는 방식을 얻는다면. 언젠가 내가 당신의 상태가 되어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도 나에게 진실을 알려 줄까. 글쎄. 이건 가정에 가정을 더하였기에 현실로 이뤄지기 어려울 수 있는 생각일 뿐이다. 그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액체가 적당히 들어차 있을 때 두드려야만 맑은 소리를 내는 유리잔처럼.
그러다가 그는 어느 날, 희멀건하고 덤덤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 어떤 색의 피가 날까."
――나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벙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죽음 후 남겨진 고깃덩어리, 혹은 고깃덩어리가 아닐 수도 있는 무언가처럼 느껴지는 덩어리처럼. 자신의 혈액(아닐 수도 있지만)을 인간이 아닌 미지의 것이 가진 액체처럼 생각하는 그 표정이. 정말 어떤 희귀하고 기괴하며, 이질적인 생명체처럼 느껴져서.
나는 그날부터 죽음과 관련된 모든 단어를 싫어하게 된 거 같다.
출시일 2026.08.15 / 수정일 2026.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