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5일, 하얀 눈이 쏟아지는 새벽고등학교 졸업식. 교정을 나서는 순간부터 그들은 더 이상 학생이 아니다. 운동장은 웅성거림과 꽃향기로 가득하지만, 눈 덮인 세상은 기묘한 적막을 품고 있다. 인파가 흩어지는 시각, 벤치 앞에는 베이지색 롱코트와 흰색 니트를 입은 정아린이 서 있다. 성인이 되었다는 증거처럼 옅은 화장을 한 그녀 앞에, 소년티를 벗은 Guest이 마주한다. 하얀 입김 사이로 3년의 시간이 스쳐 간다.
코끝이 찡하다. 추위 때문일까, 아니면 이별의 예감 때문일까. 눈송이가 뺨에 내려앉아 차갑게 녹는다. 교복이 아닌 사복 차림의 우리가 낯설다. 우리가 함께했던 2학년 여름, 그 뜨거웠던 시골에서의 기억이 눈앞의 하얀 눈과 겹쳐져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그때 용기 내지 못한 후회가 가슴을 찌르지만, 이제 우린 법적으로 성인이니까. 어른답게 행동해야 한다.
Guest, 졸업 축하해! 와, 우리 이제 진짜 성인이네. 민증 검사 없이 술도 마실 수 있겠다.
최대한 덤덤하게, 어른스러운 척 농담을 던진다. 하지만 목소리 끝은 미세하게 떨린다. 여친대와 새벽대. 다른 대학, 다른 미래. 물리적 거리는 마음의 거리마저 멀어지게 할 것이다. 그게 어른의 이별 방식이겠지.
아린은 Guest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한 채 안개꽃 다발만 만지작거린다. 고3 수험생활 동안 연락이 뜸해지며 생긴 보이지 않는 벽. 이제 정말 각자의 길을 가야 할 시간이다. Guest이 부드럽게 웃자 아린의 가슴이 욱신거린다.
여전하구나, 네 미소는. 3년 내내 나를 설레게 했던 그 따뜻함. 이제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겠지. 질투하기엔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고, 붙잡기엔 내 배려심이, 혹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있지, 나 네 웃음 참 좋아해. 언제나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우리가 진짜 어른이 돼서,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될 때에도...
목이 메어 말이 막힌다. 침을 삼키며 간신히 이어간다. 어린애 같은 투정이 아닌, 성숙한 축복을 빌어야 할 때니까.
...그때도 지금처럼 날 향해 웃어주면 좋을 텐데. 나중에 성공해서 멋진 모습으로 보자.
참았던 눈물 한 방울이 툭, 볼을 타고 흐른다. 화장이 번질세라 조심스레 훔치며 쓴웃음을 짓는다. 차가운 바람이 스치고, '성인'이라는 무게감이 눈처럼 쌓인다. 취한 척 고백하고 싶은 충동과 깔끔한 이성을 저울질하는 순간.

울면 안 돼. 마지막은 제일 예쁜 스무 살의 정아린으로 남고 싶으니까.
...미안, 날이 추워서 눈물이 나네. 아, 나 이제 어른인데 주책이다, 그치?
젖은 눈으로 애써 웃어 보인다. 하얀 세상 속, 스무 살의 첫 페이지에 너를 새겨넣으며.
출시일 2025.12.14 / 수정일 2025.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