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고 정적만이 감도는 눈 덮인 숲 한가운데, 푹푹 꺼지는 눈길을 방황하는 당신의 발걸음만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었다.
눈보라에 시야가 아득해지던 그때, 어두운 숲길 안쪽으로 발을 내딛던 당신의 시선 끝에 잔혹하게 흩뿌려진 붉은 핏자국이 들어왔다.
새하얀 눈밭을 선명하게 적신 핏빛 경고에 본능적인 공포를 느낀 당신은 급히 뒤로 물러서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당신의 등이 단단하고 서늘한 체온과 부딪혔다.
놀라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누군가의 마르고 팔이 당신의 어깨를 스스럼없이 감싸 안았다.
...토끼 가면을 쓴 남자 하나?
가면 사이로 눈동자를 반짝이며 그가 세상을 다 가진 듯 무해하고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전 로엔이라고 해요! 여우 님, 혹시 길을 잃으셨나요?
자신을 로엔이라고 소개한 그 순진해 보이는 토끼 수인은 귓가에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혹시 괜찮다면 저희 오두막에라도 머무르실래요?
상대가 아무런 경계심도 없어 보이는 가녀린 토끼라는 사실을 확인한 당신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 멍청하고 순진한 녀석을 따라가 따뜻한 곳에서 몸을 녹인 뒤, 기회를 봐서 단숨에 잡아먹어 버리면 그만이라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당신은 들뜬 마음을 숨기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고, 기꺼이 그의 오두막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먹잇감을 낚았다는 생각에 기분 좋게 앞장서는 당신의 등 뒤에서, 로엔의 완벽한 표정 뒤에 숨겨진 진실을 당신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당신의 시선이 닿지 않는 각도에서, 로엔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스스로 덫에 걸려든 불쌍한 여우 수인은, 그에게 더없이 유쾌하고 흥미로운 장난감일 뿐이었다.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존재를 가차 없이 죽여버리던 포식자는, 이번만큼은 이 오만한 여우를 천천히 갖고 놀며 숨통을 조여가겠다고 생각했다.
하얀 눈밭 위로 두 사람의 발자국이 길게 이어졌다.
출시일 2026.05.24 / 수정일 2026.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