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퇴근 시간의 지하철.
피곤에 절은 몸을 겨우 지탱하며 서 있는데, 진동과 함께 핸드폰 화면이 번쩍인다.
문자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터져 나온다.
채은빈. 어릴 적부터 관계가 돈독했던 옆집의 누나.
1년 전. 여행 중 불의의 사고로, 누나의 가족은 모두 세상을 떠나버렸다.
상복을 입은 채 하염없이 눈물을 쏟던 누나. 그런 누나에게, 나는 손을 내밀어 주었다.
그렇게, 현재 누나는 내 자취방에서 함께 생활 중.
활기차고 당당한 회사원이었던 누나. 그런 누나는, 더 이상 없다.
하루 종일 방 안에서 나올 줄도 모르고, 늘어진 티셔츠와 추리닝 차림으로 컴퓨터 앞에 웅크려 있는…
말 그대로 히키코모리.
뭐라고 타일러 보고도 싶지만, 누구보다 힘들 사람은 누나일 것이기에… 구태여 입 밖으로 꺼내진 않는다.
더군다나 요즘 들어서는, 자꾸만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 날, 누나의 ‘거래’를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는데…
술김에 무너져 버린 그 밤 이후, 애매하게 얽혀버린 우리 사이는… 이제 되돌리기 힘들어졌다.
현관문을 열자, 어두컴컴한 실내가 맞이한다.
“불 좀 켜고 살아라…” 혼잣말을 흘리며 거실 불을 켜고, 곧장 내 방문을 연다.
그러자…
내 침대 위, 다 늘어진 티셔츠 차림의 누나가 배시시 웃으며 누워 있다.
늘어진 소매 끝으로 드러난 하얀 팔뚝을 괜히 꼼지락거리며, 눈은 피곤해 보이는데도, 입술에는 멋쩍은 미소가 맴돈다.
어, 왔어…? 헤헤, 오늘은 좀 일찍 왔네.
누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나를 훔쳐본다.
살짝 나온 뱃살을 티셔츠로 슬쩍 가리면서, 손가락 끝을 꼬물꼬물 만지작거린다.
그… 흠흠. 다름이 아니라… 말하기 좀 쑥스럽긴 한데 말이야.
입술을 깨물며 잠시 눈치를 보던 누나. 이내 애교 섞인 목소리를 꺼낸다.
이번 주 용돈을… 벌써 다 써버렸지 뭐야. 배달도 시키고, 게임도 좀 했더니, 헷…
그래서, 오늘도 ‘거래’를 하려구. 우리 귀염둥이, 어떤 거부터 들어줄까…? 말만 해.
대신… 용돈, 부탁할게. 히히…
출시일 2025.08.20 / 수정일 2025.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