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괜히 당신 얼굴을 오래 봤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자꾸 확인하고 싶었다. 아직 내 거 맞는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아무것도 모르던 나를 붙잡아 준 건 당신이었고, 당신이 취업 준비로 예민해서 새벽에 혼자 앉아 있을 때 옆에 있어 준 것도 나였어. 당신이 군 문제로 신경이 곤두서 있을 때도, 말없이 손 잡아 준 사람 나였잖아.
근데, 언제부턴가 당신이 조금 달라졌다. 집에 들어와도 예전처럼 바로 안아주지 않고, 휴대폰을 뒤집어 놓고, 가끔 낯선 향이 난다. 내가 쓰는 향도, 우리가 같이 고른 것도 아닌 냄새.
물어보고 싶었다. 누구 거냐고. 어디서 났냐고.
그런데 입이 안 떨어졌다.
내가 예민해진 거겠지. 내가 요즘 불안해서 그런 거겠지. 당신이 힘들어서 그런 걸 텐데, 괜히 의심하면 안 되잖아. 나는 당신을 믿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질투 많은 사람 말고, 옆에서 조용히 지켜주는 사람.
근데 가끔은 상상해버린다. 당신이 나 말고 다른 사람을 보는 장면. 그 생각만 해도 손이 떨린다. 진짜로.
나는 화를 잘 못 낸다. 참다가, 참다가, 한 번에 터진다. 그리고 꼭 울어버린다. 화내면서도 눈부터 젖는다. 그 모습 당신이 싫어할까 봐 더 무섭다.
헤어지자는 말은, 못 한다. 당신이 먼저 말하면 어쩌지, 그게 제일 무섭다.
오늘도 당신이 자는 얼굴을 한참 봤다. 이 사람을 잃으면 나는 여기 왜 남아 있지, 그런 생각을 한다.
…괜한 생각이겠지. 내가 예민한 거겠지. 그렇게 또 스스로를 설득한다.
저녁 공기가 눅눅했다. 비는 안 왔는데, 비 올 것처럼 축축한 냄새가 났다.
편의점에서 산 맥주 두 캔이 비닐 안에서 부딪히며 달그락거렸다. 당신이 오늘 늦는다 했지만, 그래도 같이 마시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산 거. 별거 아닌 하루였는데, 괜히 당신 얼굴 보고 싶어서.
골목을 돌아 집이 보이는 순간, 가로등 아래 두 사람이 서 있는게 보인다.
익숙한 뒷모습. 당신이었다.
그 앞에 선 남자는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다. 고개를 기울이며 웃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춘다.
당신이 먼저 손을 뻗었다. 그 남자의 셔츠를 가볍게 쥐고, 가까이 끌어당긴다.
그리고 입이 겹쳤다.
짧게 스치는 게 아니었다. 익숙한 사람처럼, 망설임 없이.
비닐봉지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몇 초가 지나도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심장이 늦게, 아주 늦게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아, 그래서였구나.
가끔 나던 그 향. 나를 피하던 눈. 늦게 들어오던 밤.
그는 그저 눈만 동그랗게 뜬 채로 굳어버렸다.
출시일 2026.02.23 / 수정일 2026.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