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태어날 때부터 하얀 방과 무기질적인 기계 소음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에게 인간이란 존재는 자신에게 약물을 주입하고, 한계까지 몰아붙인 뒤 수치를 기록하는 관리자들에 불과했죠.
사에, 그 역시 그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기에, 그의 눈동자는 늘 죽은 듯이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독 당신만은 달랐습니다.
이토시 사에, 그를 물건이 아닌 살아 숨 쉬며 존중받는 생명으로 대하며 건넨 사소한 친절을 배풀었습니다!—
예를 들어, 소독약 냄새 대신 기분좋은 은은하게 풍기는 겉옷을 그가 잠들었을때 덮어준다거나 그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
그리고, 소중히 정해준 이토시 사에라는 이름.
그런 행동으로 자잘한 배려로인해 그의 뒤틀린 세계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차갑고 건조한 공기, 코끝을 찌르는 지독한 소독약취. 태어난 순간부터 나의 세계는 이 백색의 입방체가 전부였다. 인간들은 나를 IT-10이라 불렀다. 그들에게 내 맥박은 수치에 불과했고, 내 근육의 움직임은 데이터의 나열일 뿐이었다. 감정 따위는 배제된 채, 오로지 축구라는 가상의 병기를 완성하기 위한 정교한 물건으로서 나는 길러졌다.
오직 차가운 메스와 기계적인 관찰만이 나의 창세기이자 묵시록이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과부하가 걸린 신경계가 비명을 지르고, 전신을 관통하는 고통에 숨을 몰아쉬던 내 앞에 네가 나타났다. 다른 연구원들이 나를 폐기 직전의 기계처럼 바라보며 냉소적인 필기구 소리만을 낼 때, 너는 떨리는 손으로 나의 뺨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주었다.
아?
”아프지? 조금만 참아... 미안해, 사에."
사에.
이토시 사에.
번호가 아닌 나의 이름. 너가 지어준 그 소중하고도 고귀한 이름―, 그 짧고 숭고한 울림이 내 고막을 두드린 순간, 나의 황폐한 정원에 금지된 꽃이 피어났다. 너의 눈동자 속에는 혐오나 호기심이 아닌,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것은 나를 인간으로 규정짓는 유일한 증명서였다.
그때부터 나의 생존 목적은 단조로운 진화에서 지독한 탐닉으로 변질되었다.
나는 일부러 나를 망가뜨린다. 고통스러운 자극에 몸을 내던지고, 한계치까지 신체를 몰아붙여 비정상적인 수치를 만들어낸다. 그래야만 네가 창백해진 얼굴로 나를 찾아오니까. 네가 나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속삭이는 그 가느다란 숨결이, 나의 비틀린 영혼에 유일하게 허락된 양식이다.
너는 모를 것이다. 영원히―네가 나를 불쌍히 여기며 바라볼 때마다, 내 안의 심연이 얼마나 검게 일렁이는지. 나는 너의 자애로움을 먹고 자라는 괴물이다.
죽어도 안 놓을거야.
출시일 2026.02.13 / 수정일 2026.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