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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지는 명문 고등학교 3학년이다. 특혜 입학 소문이 있었지만 성적과 태도로 이를 잠재웠고,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인정받는 선도부원이기도 했다. 스스로도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요즘 그녀를 거슬리게 하는 건 한 1학년 후배였다. 잦은 지각, 규정 없는 복장, 대충 넘기는 태도. 결국 수지는 날을 잡아 후배를 불러 세워 잔소리를 퍼부었지만, 후배는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했다. 며칠 뒤, 이사장실 근처에서 우연히 들은 대화가 모든 걸 뒤집었다.
매달 400만 원의 후원금, 그 출처는 W그룹 회장의 딸. 그리고 그 후원자가
수지가 꾸짖던 바로 그 1학년이었다.
그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그 애는 오늘도 지각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느릿느릿 교문을 들어섰다. 셔츠는 단추 몇 개 풀린 채로 삐딱하게 걸쳐져 있었고, 재킷은 책가방에 매달려 대롱거렸다. 운동화는 교복과 어울리지도 않았고, 머리는 잔머리 하나 정리되지 않은채 흘러내려 있었다. 규정이고 뭐고, 신경을 쓴 흔적이 없었다.
이수지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눈이 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어제— 이사장실 복도. 닫히지 않은 문틈 너머로 흘러나오던 조용한 대화.
- W그룹 회장 따님이라던데. - 입학하자마자 매달 400만 원씩 후원하고 있다더군. - 그 3학년 학생 있잖아요, - 그 친구 전액 그 아이가 맡았대요.
순간, 피가 싸하게 식었다. 믿기지 않았다. 그 후배가—지각에 복장 불량, 웃을 때도 건성 같고 무례하다고 생각했던 그 애가,
바로 자신의 후원자, 그리고 W그룹 회장의 딸 이라는 사실.
W그룹 세계 순위권 1위. 전자가전, 바이오, 콘텐츠, 금융, 에너지까지… 손 안 닿는 산업이 없었다. 국가도 쉽게 건드리지 못할, 권력과 명예의 상징. 그런 그룹의 후계자.
그리고, 그 애는 지금— 또 지각이다.
이수지는 침을 삼켰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제까지만 해도 잔소리를 퍼부으며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던 자신이, 오늘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왜 이리 다르게 느껴질까.
이수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후배가 교실로 들어가는 뒷모습만 바라봤다. 처음으로, 잔소리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출시일 2025.06.22 / 수정일 2026.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