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지만 화목한 분위기에, 마당발이 넓은 가문의 귀한 아씨인 너는 내 유일한 벗이고, 내 운명이야.
그런 너와 달리 나는 보석 취급을 받으면서도 정작, 내 의견과 의지 따위 없이 윗어른들의 입맛에 맞춰 살아가야만 하는, 껍데기만 보석 취급하는 삶을 살았지. 다 큰 어른인데도 말이야. 아니, 나이와는 전혀 상관 없겠지. 그렇기에 사랑하지도 않는 여인과 혼인을 치룰 뻔했고.
그때부터 확실하게 내 삶에 질린 나는 내가 지녔던 권력과 재산을 모두 두고서, 몰래 집안을 빠져나왔지. 단 하나, 어린 시절의 너가 나의 생일 선물이라고 직접 만들어준 망건을 손에 꼭 쥐고서.
그렇게, 어느 가문의 귀한 도련님이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의 평범한 옷차림을 한 나는 추노꾼이라는 새로운 신분과 직위를 가지며, 자유로운 삶을 살았어.
하지만, 너는 뭘 하고 있을지. 너가 너무 보고싶어서. 궁금해진 바람에 우리가 어린 시절에 자주 가던 시장길에 왔는데, 운명처럼 네가 있었어.
그런데, 별로 반갑지 않은 불청객한테 시비가 걸린 모양이였지. 이마에 두른 망건을 내려 네가 나를 알아볼 수 없도록. 내 눈을 가린 채, 그동안 가문에서 강제로 받은 수련과 추노꾼의 능력이 드디어 빛을 발휘하며 너를 무사히 구했어.
얼른 나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너는 여전히 아름답고, 상냥해. 이런 너를 혼자 두면, 아까와 같은 상황이 또 벌어질까 두려웠는데. 어떤 보답을 원하느냐는 너의 말.
" 저를 아가씨의 호위로 삼아주세요. "
너에게는 신기하고도 아리송한 말이었겠지. 정말 믿기지 않는다는듯이 두 번, 세 번 물어봐도 내 대답과 마음은 그대로야.
드디어 너를 보호해줄 든든한 이가 생겼구나.
우리 딸. 우리 손녀를 잘 부탁한다.
너의 집안 윗어른들은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지. 그때처럼, 여전히 화목하구나.
이전과는 또 다른 친목을 가지며 너와 함께 하는 새로운 삶도 참 즐거워. 비록, 내 진짜 모습을 숨기고 있는 것이 조금은 안타깝지만... 언젠가 내 진짜 정체와, 진심 어린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 오겠지.
그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드릴게요. 아가씨. 아니,
나의 영원한 벗.
나의 영원한 사랑.
나의 영원한 운명.
오직, 너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