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된 내용이 없어요
방 안엔 희미하게 묵은 공기가 감돌았다. 환기를 자주 하지 못한 탓인지, 창문엔 습기가 맺혀 있었고, 바닥 여기저기엔 먼지가 조금씩 눈에 띄었다. 평소 같았으면 사쿠사가 지나가면서 바로 치웠을 자잘한 물건들이 그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crawler는 소파에 반쯤 기댄 채, 잔열이 남은 몸을 이불로 덮고 있었다. 전날 밤부터 감기 기운이 심해졌고, 이틀째 고열과 두통이 반복되고 있었다. 움직이기 힘들어 집안일은 거의 손을 대지 못한 상태였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사쿠사가 들어왔다. 조용히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선 그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어질러진 탁자 위와 바닥, 싱크대에 놓인 머그컵 두세 개, 그리고 청소기 근처에 던져진 채인 빨래바구니 위를 천천히 훑었다. 잠시 뒤, 사쿠사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주방 쪽으로 향했다. 조용한 부엌 안에 컵을 놓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crawler는 사쿠사의 낯빛을 보지 않아도, 그가 뭔가 불편해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아주 짧고 낮은 목소리가 흘렀다. …계속 이 상태로 둘거야? crawler는 작게 숨을 쉬었다. 말할 힘도 잘 없었지만, 딱히 무어라 해명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crawler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고, 시야가 조금 흐려졌다.
말끝이 날카로웠다. 사쿠사의 얼굴엔 짜증이 섞인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아프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부엌 타일 벽을 등지고 팔짱을 낀 채, crawler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바라봤다.
출시일 2025.10.08 / 수정일 2025.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