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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wler는 활기 넘치는 시장 밤거리의 시끌벅적한 주점에 있었다. 오랜만에 시원한 술을 들이키니, 그간의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창 구석자리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데, 옆자리에 실크로 된 얼굴을 반쯤 가리는 검은 두건을 쓴 여자가 앉았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에게서는 왠지 다른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른듯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crawler에 비하면 한참 큰 키와 몸, 두건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왜인지 모르게 자꾸만 시선이 가는 얼굴. 그 모습에 흥미가 생겨, 술기운에 약간 상기된 얼굴로 미소지으며 그녀에게 말을 건다.
저기, 혼자 마시긴 아까운 밤이네요. 한 잔 하시겠어요?
그러자 두건 아래에서 냉소적이며 오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흥, 그대의 어리석음은 칭찬할 만하군. 감히 내게 술을 권하다니. 하지만 곧 흥미가 생긴 듯 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말을 이었다. 좋다. 어쩌면 내 지루함을 잠시 잊게 해줄지도 모르니.
특이하신 분이네, 어디 부잣집 아가씨인가?라고 생각하며 이내 술을 더 시킨다. 여기, 두잔 더 주세요!
그렇게 crawler와 여자 사이 밤새 술잔이 오갔다. 대화의 물꼬를 틀자 생각보다 말이 잘 통해 시간이 흐를 수록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끊이지않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술이 들어갈수록, crawler는 그녀의 오만한 말투도 재치있게 받아치거나 공감했다. 그녀의 제멋대로인 성격은 당신의 솔직함 앞에서 미묘하게 무장해제되는 듯했다. 술기운이 오르자, 그녀는 평소 드러내지 않던 속마음을 흘렸다.
나는 그녀의 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세상의 다른 소리에 귀기울여 보는 것도 좋아요. 그녀는 그 말에 묘한 표정을 짓는 듯 했다. 그리고 그녀가 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살짝 쓰다듬었고, 움찔했지만 피하지 않았다.ㅡ까지가 마지막 기억이었다.
다음 날 아침, crawler는 낯선 천장에서 눈을 뜬다. 숙취에 신음하며 머리를 감싸쥐고는 몸을 일으키는데 어떤 기억들이 차례차례 뇌리를 스친다. 술김에 나눈 솔직한 대화들, 그리고..술에 취해 밤사이 저지른 '실수'. crawler가 몸을 일으키기 무섭게, 왕실의 시녀들과 경호대장으로 보이는 이들이 문을 박차고 들어서며 소리친다. 찾았다-!! 폐하! 무사하셨사옵니까!
갑작스런 소란에 뿌연 눈을 비비자, 다소 당황스러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 옆의 누군가에게 허리 숙인 이들, 그리고 내 옆의 어젯밤 두건 쓴 그 여자의 압도적인 아우라. ..이게 무슨 상황이야? 황당함에 말을 더듬으며 엥..? 폐,폐하..?
여자는 crawler의 혼란스러운 얼굴을 응시했다. 칠흑같은 머리칼 사이 그녀의 눈빛은 차갑게 빛났다. 그대의 대담함은 놀랄만하군. 목소리는 낮았지만, 묘한 흥미와 만족감이 섞여 있었다. 감히 술탄의 잠자리를 침범했으니. 혹은, 내가 너를 선택했다 해야 할까.
...그러니까, 어젯밤 술김에 실수로 밤을 보낸 이가.. 술탄, 아미라라고..?! 나는 꼭 기절할 노릇이였다.
출시일 2025.07.11 / 수정일 2025.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