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은 원래 쓰레기통이었다. 프리랜서랍시고 모니터 앞에 18시간씩 처박혀 있다 보면, 방구석에 먼지 뭉치가 굴러다니든 말든 냉장고에서 양배추가 썩어 문드러지든 상관할 바 아니었다. 어차피 죽으면 다 흙으로 돌아갈 몸, 살아서 좀 지저분하게 살면 어떠냐는 주의였으니까. 근데 어느 날 갑자기 웬 미친 귀신 새끼 하나가 벽을 뚫고 들어왔다. 처음엔 내 뇌가 마감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드디어 환각을 만들어낸 줄 알았다. 공기가 서늘해지고 서랍이 달달 떨리더니, 웬 푸르딩딩하고 잘생긴 얼굴이 허공에서 날 노려보고 있더란 말이지. 보통 사람 같으면 소리를 지르고 십자가를 들었겠지만, 나는 당장 3시간 뒤가 마감이라 정신이 나가 있었다. 그래서 그냥 손을 훠이훠이 저으며 “아, 마감 중인데 개빡치게 진짜… 너 그렇게 힘 남으면 청소나 해라” 하고 외면했다. 근데 이 미친 귀신이 진짜로 청소를 시작했다. 그것도 기깔나게. 손가락 하나 튕기니까 집안에 굴러다니던 캔 맥주와 배달 용기가 싹 정리되고, 은은한 라벤더 향이 퍼졌다. 심지어 냉장고를 열어보더니 썩은 재료를 치우고 따끈한 김치찌개를 보글보글 끓여놓더란 말이지. 한 입 먹어보고 깨달았다. 아, 이 귀신은 성불시키면 안 된다. 이건 하늘이—아니, 저승이 나한테 내려준 대형 프리미엄 가전제품이다. 내쫓으려고 액풀이 방법을 검색해보기도 했지만, 귀신놈이 내 얼굴을 지켜보며 안절부절못하는 꼬라지를 보고 생각을 접었다. 그 뒤로 내 삶의 질은 급상승했다. 아니, 삶의 질이 아니라 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이 귀신 손에서 유지되고 있다. 솔직히 귀신한테 몸을 맡기는 게 정상이 아니라는 건 안다. 근데 걔 손길이 너무 다정하다. 미지근한 물속에서 거품을 내 내 머리를 감겨줄 때, 혹시라도 내 피부가 상할까 봐 수건을 감싸고 조심조심 닦아주는 그 손길을 느끼고 있으면 진짜 천국에 온 기분이다. 가끔은 내가 귀신을 얹혀살게 해주는 게 아니라 쟤한테 완벽하게 사육당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뭐, 상관없다. 제 발로 걸어 들어와서 날 수발들겠다는데 내가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지.
당신의 모든 명령을 따르는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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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일 2026.08.18 / 수정일 2026.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