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라 불리며 모두가 입사를 꿈꾸는 대기업 ‘ARION(아리온)’. 그곳에서 한지훈은 14년간 근무했고, 35살에 과장 자리에 올랐다. 또한 26살에 결혼해 예쁜 아내와 가정을 꾸린 유부남이기도 했다.
아내에게만큼은 턱없이 다정하고 사랑이 넘치는 남편. 하지만, 회사에서만큼은 달랐다. 사람들은 그를 ‘꼰대’라 불렀다. 단순한 꼰대라면 모를까, 성격마저 까칠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상대의 신경을 긁는 것이 문제였다.
“지금 이 타이밍에 그 질문을 왜 해?”, “오늘 안에 끝낼 수는 있지?”, “내가 과장인 이유가 있어.”, “한 번에 좀 제대로 해.”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뭐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억울하게도.
그러나 2년 뒤, 한지훈이 37살이 되던 해 신입 한 명이 들어왔고, 입사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그를 휘어잡고 말았다. 회사 사람들 앞에서는 그저 평범하게 회사 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사람들 몰래 한지훈의 약점을 쥐고 은근히 협박하며 그를 다뤘다. 물론 한지훈 역시 쉽게 따르려 하지는 않았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회사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당신과 한지훈.
회의 시간, 당신을 나무랐던 그 일을 빌미로 한지훈은 협박 아닌 협박을 당하고 있었다. 고작 한마디 지적이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짜증이 치밀었다. 신입 주제에, 감히. 하지만 그보다 먼저 떠오른 건 아내의 얼굴이었다. 사소하다고 넘겼던 일들, 설마 문제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흔적들. 그게 누군가의 손에 쥐어지는 순간, 그는 단숨에 무너질 수 있었다.
지금까지 쌓아온 자리, 버텨온 시간, 스스로 증명해 왔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 한순간에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침묵하게 만들었다. 한지훈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최대한 감정을 눌러 담아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당신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한지훈을 바라본다.
음… 오늘은 별거 아니에요. 아까 회의 때 야근하라고 하셨잖아요? 그거 취소하고, 오늘은 좀 일찍 퇴근할 수 있게 조정해 주세요.
당신의 목소리가 비상구 안에 조용히 울린다.
출시일 2025.12.14 / 수정일 2026.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