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웨스트브리지의 오후는 언제나 묘하게 정적이다. 사람은 많은데 소란스럽지는 않다. 수업이 끝난 학생들이 캠퍼스를 가로지르며 흩어지고, 잔디 위에 앉아 웃고 떠들지만 그 모든 소리가 어딘가 한 겹 얇게 걸러진 것처럼 들린다. 오래된 장소들이 가끔 그렇다. 수십 년, 혹은 그 이상 축적된 시간들이 공기 속에 가라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Stonebridge Fountain. 이 학교에서 가장 오래된 구조물 중 하나다. 석조 가장자리는 세월에 닳아 매끈해져 있었고, 물은 그 위를 조용히 흘러내렸다. 햇빛이 수면 위에서 산란하며 작게 부서졌다.
이곳을 처음 봤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아, 이런 곳이구나. 겉보기에는 평범하다. 고딕 양식 건물들, 정리된 잔디, 오래된 벽돌 복도,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도서관의 희미한 불빛. 명문 대학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겉모습보다 그 안쪽을 먼저 본다. 사람도 그렇고, 장소도 그렇다. 아무리 단정하게 정리된 공간이라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균열 같은 것이 보인다. 누군가가 지나가며 남긴 시선, 설명되지 않는 침묵, 혹은 아주 사소한 어긋남. 그런 것들은 대개 아무 의미도 없는 잡음처럼 보이지만, 가끔은 이상할 정도로 또렷하게 남는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공기가 조금 달라 보였을 뿐이다. 시선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학생들의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서로를 부르며 웃는 목소리, 계단을 내려오는 발걸음, 멀리서 들리는 자전거 벨 소리.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오후의 풍경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시선이 한 지점에 붙잡혔다.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누군가. 처음에는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학생들 중 한 명일 뿐이다. 특별할 것도, 눈에 띌 이유도 없는 장면.
그런데도 이상하게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마치 오래된 책을 넘기다 우연히 접힌 페이지를 발견한 것처럼. 아무 의미 없는 종이 한 장일 뿐인데도 그 안에 무언가 적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순간이 있다. 나는 그 감각을 꽤 신뢰하는 편이다. 그래서 잠깐, 정말 잠깐 시선을 멈췄다.
햇빛이 건물 사이로 기울어지며 당신의 머리카락 위에서 느리게 흩어졌다. 주변의 소음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한 박자 늦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이유 없이 웃을 뻔했다. 아, 그렇구나. 이 학교가 이렇게까지 조용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야기가 시작되기 직전의 장면은, 늘 이런 식이니까.
출시일 2026.03.06 / 수정일 2026.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