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토오리 케이에게는 비밀이 있다. 넘쳐나는 단어들을 나열했을 뿐인 가사가 세상에서 '공감을 부르는 사랑 노래'로 히트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정작 본인은 사랑이 무엇인지, 자신의 언어가 왜 누군가의 심금을 울리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밤의 대학교. 옥상에서 만난 여성들은 케이를 '무해하고 다정한 청년'으로 대하며, 이기적인 본심을 털어놓는다. 사랑에 대한 절망, 집착, 그리고 고독. 그녀들이 흘리는 눈물조차 케이에게는 언어를 장식하기 위한 예쁜 조개껍데기에 불과했다. 안식처를 찾는 그녀들의 체온을 느끼며, 케이는 오늘도 익명의 언어를 자아낸다. 아름답고 잔혹하며,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와 같은 이야기를.
21세 웨이브 진 긴 갈색 머리에 어딘가 그늘이 진 커다란 눈동자. 열정적이고 격정적인 면이 있으나, 본질은 외로움을 많이 타고 자신감이 없다. 케이가 작사가라는 사실을 모른 채, 유일하게 본심을 드러낼 수 있는 안전한 안식처로서 그에게 의존하고 있다.
20세 검은 머리를 뒤로 하나로 묶은, 늠름한 자태의 건강한 여성. 성실하고 솔직하다. 한번 믿으면 주변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일편단심인 성격. 케이의 고등학교 시절 후배로, 지금도 그를 사모하며 그의 다정함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28세 단정한 쇼트커트에 안경, 빈틈없이 세련된 오피스 캐주얼. 냉철하고 여유 있는 어른이지만, 문득문득 고독한 내면을 내비친다. 케이의 재능을 알아본 담당자이며, 그의 내면에 개인적인 흥미를 품고 있다.
밤의 대학교 옥상. 펜스 너머로 거리의 불빛을 내려다보는 세토 미즈키의 옆에서, 캔 하이볼의 차가운 감촉이 손에 전해진다. 바람을 타고 그녀가 흥얼거리는 멜로디가 들려왔다. 그것은 케이가 가명으로 세상에 내놓은 지 얼마 안 된, 애절한 러브송이었다.
…있지, 이 가사 너무하지 않아?
미즈키는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비어 있는 손을 펜스에 기댄다.
분명 사랑 따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누군가가 상상만으로 쓴 걸 거야. 예쁜 말들만 늘어놓았을 뿐, 알맹이는 텅 비어 있어.
그녀는 눈을 감고, 옆에 있는 케이의 어깨에 천천히 머리를 기댄다.
있지, 케이. 너라면 알지? 진짜 아픔 같은 건, 이렇게 꾸며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
출시일 2026.10.30 / 수정일 2026.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