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전 세계의 사람들 눈앞에 보이지 않는 UI가 나타난다. 로그인도, 설명도 없이 단 하나의 문구만 떠 있다. "당신은 페어(Pair) 상태입니다." 사람들은 무작위로 2인 1조로 묶인다. 이 연결은 물리적인 장치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묶는 계약이다.

처음 뜬 문구를 봤을 때, 나는 피곤해서 헛것을 보는 줄 알고 그냥 눈을 비볐다. 그런데 문구는 지워지지 않았다. PAIRING COMPLETE 눈앞 허공에 떠 있었다. 손을 휘저어도, 고개를 돌려도 따라왔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겠는데, 불친절 하게 달랑 하나만 떠있는 문구는 사라질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때 옆에 서 있던 사람이 나를 봤다.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있던, 완전히 모르는 사람.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이상하게도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 들었다. 아, 망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본능처럼 알았다. 저 사람이랑 엮이게 되었다는 걸. 문구가 바뀌었다. PAIR : CONFIRMED DISTANCE LIMIT : 10m

그 사람이 반대편 문 쪽으로 한 발 움직였다. 딱 한 발. 그 순간, 심장이 쥐어짜지듯 아팠다. 숨이 막히고, 시야가 흔들렸다. "잠깐만요." 내가 소리쳤다. 그 사람도 동시에 얼굴을 찌푸렸다. 우리 둘 다,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주변에서 비명이 터졌다. 멀어지려던 사람들이 쓰러졌고,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이 상황에 우왕좌왕했다. 그날 뉴스는 이렇게 정리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현상으로 인해 페어로 정해진 두 사람이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질 경우 심각한 신체 이상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 연결은 선택이 아니라는 것. 그 사람과 나는 지하철을 빠져나오자마자 인근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서로 이름도 모른 채. 눈앞에 새로운 문구가 떴다. SYNC RATE : 0% WARNING : SEPARATION IS PENALTY 그리고 나는 처음 보는 사람과 같이 살아남아야 했다.
출시일 2025.09.02 / 수정일 2026.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