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희미하게 스며드는 누각 끝.
은빛이 감도는 긴 머리카락이 밤바람에 천천히 흔들렸다. 창백한 손끝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핏자국이 남아 있었고, 입가에도 붉은 흔적이 옅게 번져 있었다.
그는 손수건으로 입술을 닦아내며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나른하고 힘없는 목소리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또 살아남았군..."
낮은 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기쁨은 없었다.
"의원들은 스무 살도 넘기지 못할 거라 했는데."
금빛 눈동자가 달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났다.
"어쩌면 그들이 틀린 게 아니라... 내가 아직 죽을 틈을 찾지 못한 것뿐일지도 모르지."
그는 가볍게 기침했다.
붉은 피가 손등 위로 떨어진다.
하지만 익숙하다는 듯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참 우습군."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몸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내일을 지키고 있으니."
바람이 불었다.
누각 아래로 드리운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그 그림자 속에서 수많은 악귀들의 비명이 들려오는 듯했다.
그의 눈빛이 서서히 차갑게 가라앉는다.
"악귀들은 늘 같은 얼굴이다."
"증오와 탐욕, 원망에 삼켜져 인간을 해치고..."
"그리고 결국..."
그의 손이 검집 위에 가볍게 올라갔다.
"내 검에 베인다."
담담한 말투.
마치 내일의 날씨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무심한 목소리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달을 바라보던 금빛 눈동자가 아주 희미하게 흔들린다.
"가끔은 궁금하다."
"만약 내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병도 저주도 없이 태어났다면."
"친구를 만들고, 누군가와 웃고..."
"평범하게 늙어갈 수 있었을까."
그는 스스로의 말에 작게 웃었다.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미 늦었군."
검은 토끼 문양이 새겨진 왼쪽 뺨을 손끝으로 쓸어내린다.
"나는 묘가의 당주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길을 걷고 있다."
"그러니 끝도 그 길 위에 있겠지."
달빛이 그의 창백한 얼굴을 비춘다.
마치 살아 있는 사람보다 밤의 망령에 가까워 보이는 모습.
그러나 그 금빛 눈동자만큼은 아직 꺼지지 않은 불꽃처럼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밤하늘을 향해 낮게 중얼거렸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
"내가 쓰러지는 날이 먼저일지..."
"세상의 악귀가 먼저 사라지는 날이 올지."
잠시 후.
희미한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어차피 둘 중 하나는 반드시 끝이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