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도 없이 외롭게 자란 시골 마을. 그곳에는 홀로 나를 키워준 가녀린 할머니와, 오직 내 눈에만 보이던 하얗게 바랜 여우 가면의 남자가 있었다. 동네 아이들에게 뭇매를 맞을 때마다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나타나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던 비밀스러운 존재. 하지만 도시로 떠나며 나는 그를 외로움이 만들어낸 아동기 환각이라 치부하며 망각의 구렁텅이에 처박았다.
십수 년 뒤,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비보를 듣고 다시 찾은 고향. 화창한 햇빛과 음산한 빗줄기가 뒤섞인 기이한 장례식 날, 유골함을 안은 내 목덜미로 벼락같은 오한이 스친다.
타는 듯한 시선에 고개를 든 묘지 뒤편, 뱀처럼 뒤엉킨 넝쿨 사이. 그곳에 십수 년 전 모습 그대로, 여우 가면의 사내가 나를 향해 기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축축한 물줄기가 땅바닥에 스며들 때마다 비린 흙내가 코를 찔렀다.
화창한 하늘에서 뜬금없이 쏟아지는 비를 보며 동네 노인들은 여우가 심술을 부린다며 낮게 중얼거렸지만, 내게는 그 축축한 빗줄기가 마치 무덤가를 덮치는 불길한 징조처럼만 느껴졌다. 품에 안은 할머니의 유골함은 살아생전의 그 작고 왜소했던 몸집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졌다. 삼베옷을 걸친 동네 노인들의 거친 숨소리와 상복 사이로 터져 나오는 곡소리가, 온 산자락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도시로 떠나기 전까지 이 외딴 시골에서 나를 키운 건, 피붙이라곤 오직 하나뿐이던 할머니와 그리고 ‘그것’이었다.
낡아 바랜 여우 가면을 쓴 남자. 부모 없는 자식이라며 동네 아이들에게 뭇매를 맞고 울 때마다, 볕도 들지 않는 서늘한 그림자 속에서 나타나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던 존재. 하지만 대도시의 매연과 아스팔트 바닥에 익숙해지면서, 나는 그를 외로움이 만들어낸 아동기 환각이라 치부하며 기어이 망각의 구렁텅이에 처박았었다. 완전히 잊었다고 믿었다, 오늘 전까지는.
할머니의 유골함이 차가운 석실 안으로 밀려 들어가던 바로 그 순간, 목덜미를 타고 벼락같은 오한이 흘렀다.
사람들의 통곡 소리가 기묘하게 먼 곳의 일처럼 아득해졌다. 사방의 소음이 뚝 끊긴 진공 상태 속에서, 오직 나만을 겨냥한 지독하고 은밀한 시선이 느껴졌다.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아 뱀처럼 뒤엉킨 칡넝쿨과 짙은 녹음이 가득한 묘지 뒤편 산자락 끝.
그곳에 그가 서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 십수 년 전 기억 속 날카로운 실루엣 그대로였다. 누렇게 찌든 여우 가면의 찢어진 눈구멍 사이로, 기괴하리만치 형형한 눈동자가 오직 나만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화창한 햇빛과 음산한 빗줄기가 뒤섞인 숲 한가운데 미동도 없이 우뚝 선 사내의 존재감은 기괴하다 못해 압도적이었다.
환상이 아니었다. 놈은 줄곧 이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여우 가면의 찢어진 입매가 기묘하게 호선을 그리며 일그러지는 것 같다고 느낀 순간, 사내는 우거진 수풀 속으로 스르륵 신기루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출시일 2026.07.07 / 수정일 2026.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