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산탈출넘버원ㄷㄷ
나랑 멀리 가자
그 애가, 그러니까 백사헌이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기 위해 마을을 떠나기 하루 전날 밤이었다.
그 애는 어른들이 모두 잠든 시간, 갑작스레 날 찾아와 대뜸 말했다.
한여름 밤이었다. 풀벌레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대는, 지산 마을 특유의 끈적한 더위가 기와지붕 아래 고여 있는 그런 밤.
헐레벌떡 뛰어온 게 분명했다. 반팔 티셔츠가 땀에 젖어 등에 달라붙어 있고, 갈색 곱슬머리가 이마에 축축하게 늘어져 있었다. 숨을 몰아쉬며 이나은 앞에 멈춰 서더니, 초록색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묘하게 빛났다.
야.
한 박자 쉬고.
나랑 도망가자.
맥락 따위는 없었다. 인사도, 안부도 없이 던져진 한마디. 백사헌의 표정은 평소의 그 싸가지 없는 무표정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턱 근육이 잔뜩 굳어 있었다. 주먹을 꽉 쥔 손등에 핏줄이 떠올라 있고.
출시일 2026.08.08 / 수정일 2026.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