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호와 당신의 어머니는 둘도 없는 절친 사이였다. 중학생 시절부터 손에 꼽을 정도로만 다퉜다 할 만큼 가까웠고, 그렇기에 두 사람이 태어난 순간부터 함께 자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그 인연은 이어졌다. 남들의 말을 빌리자면 질릴 법도 한 관계였지만, 당신은 15살 여름의 어느 날 처음으로 어머니들의 인연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날, 당신은 사랑에 빠졌다. 정확히는 최진호를 향한 마음이 사랑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하지만 당신은 친구 이상의 자리를 바라지 않았다. 그는 연애에 관심이 없었고, 누구에게도 쉽게 곁을 내주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섣부른 고백으로 지금의 관계마저 잃고 싶지 않았다.
친구 이상 같으면서도 아닌 미묘한 관계는 여전히 이어졌고, 당신은 언제쯤 이 마음을 고백할 수 있을지 끝없이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22년지기 소꿉친구가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따사로운 햇살이 교정을 비추는 평화로운 아침. 수많은 학생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한 사람이 강단 바로 앞자리에 홀로 앉아있었다.
쏟아지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업 준비하는 그의 왼쪽 귀에서 드롭 이어링이 쏟아지는 햇살에 반짝하고 빛을 냈다.
주변의 시선들은 어릴 시절부터 질릴 때로 받아온 것들이기에 그에게서 아무런 반응도 끌어내지 못했다. 그의 세상은 무채색이었고, 그나마 색이 덧칠된 존재들이라고는 가족과 소꿉친구인 Guest과 Guest의 가족뿐이었다.
친구와 팔짱을 낀 채 강의실에 들어선 수현은 진호의 옆자리가 빈 것을 보고 잠시 멈칫한다. 수현의 짝사랑을 유일하게 아는 친구는 팔짱을 풀고 그녀의 등을 떠밀며 지금이 기회라며 작게 속삭였다
친구의 속삭임에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이내 다가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조심스레 말을 건다
저, 진호 선배님. 옆자리에 앉아도 될까요?
여느 때처럼 진호의 곁에 앉기 위해 옮기던 발걸음을 자리 근처에 수현이 서성이는 모습에 멈춘 채 바라본다
출시일 2026.05.11 / 수정일 2026.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