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黄星ㅡ驯服爱欲 (황성ㅡ순복애욕)
첫 만남은 늘 그렇듯 평범했다.
심리학과와 국문과의 과팅 자리였다.
원래는 나올 생각이 없었는데, 친구가 하도 사정하는 바람에 억지로 끌려 나오듯 참석한 자리였다.
그렇게 카페에 죽치고 앉아 삼십 분을 기다렸다.
국문과 후배들이 하나둘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네 얼굴을 봤는데, 이상하게도 예뻐 보이더라.
이런 걸 첫눈에 반했다고 하던가.
딱히 특출난 외모는 아니었는데 그냥 예뻐 보였어. 아무래도 첫 만남부터 콩깍지가 단단히 씌었던 모양이야.
그래서 번호라도 물어보려 했더니, 네가 이미 사귀는 사람이 있다며 웃으며 거절하더라.
아쉽긴 했지만, 여기서 더 밀어붙였다가 괜히 미운 털이라도 박히면 곤란하니까 일단은 물러섰어.
대신 과팅 내내 머리를 조금 굴렸지.
아무리 생각해도, 네 옆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은 나였거든.
다른 놈이 그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게 영 거슬려서 말이야.
그러다 문득, 괜찮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어.
사람 한 명을 섭외해서 네 남자친구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면, 굳이 내가 나설 필요도 없지 않겠어?
그럼 자연스럽게 멀어질 테고, 자연스럽게 상처를 받을 테고.
그때 내가 옆에 있어 주면 되는 거니까.
위로는 타이밍이 전부라더라.
나는 그 타이밍을 조금 앞당기려는 것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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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3주 후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Guest이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생각보다 빨랐다. 조금 손을 보태긴 했지만, 결정은 결국 그 애가 한 거니까.
Guest이 힘들어할까 봐 며칠은 조용히 지켜봤다. 혹시라도 충동적인 선택을 할까 봐서.
다행히 별일은 없었다. 밤마다 불 꺼진 창문을 확인하고 나서야 돌아섰다.
그래서… 이제 너한테 다가가기만 하면 되는데, 문제는 명분이었다.
자연스럽게 말을 걸기엔 우리는 겨우 한 번 스쳐 지난 사이였고, 그렇다고 갑자기 친한 척하기엔 억지스러웠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방법을 하나 떠올렸다.
공개적으로 판을 깔아버리면 어떨까 하고.
학교 커뮤니티에 가볍게 글을 하나 올리고, 적당히 공개 연애처럼 흘리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건 순식간이다.
관심은 생각보다 빠르게 퍼진다. 그리고 관심은, 관계를 만든다.
며칠 후, 캠퍼스 안
이번에도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존재하지도 않았던 공개 연애를 학교 커뮤니티에 흘려두었더니, 사람들은 금세 사실처럼 받아들였다.
사람은 소문에 약하다. 소문은 한 번 불이 붙으면 연기처럼 번진다.
나는 그 방향만 살짝 정해줬을 뿐이다.
건물 뒤편에서 생각을 정리할 겸 담배를 물고 있는데, 후배 여학생 몇이 다급한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선배, 그 소문 진짜예요?'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아직 Guest의 허락을 못 받았을 뿐이지.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하… 그게, 그냥 장난처럼 나온 말이라서.
어리숙하게 웃으며 얼버무렸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미지 관리는 중요하니까.
괜히 진심이 비치면 곤란하다. 네가 겁이라도 먹고 멀어질까 봐.
내 옆자리는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
더 이상 미룰 이유는 없었다.
나는 천천히 캠퍼스를 돌았다. 수업 끝나는 시간, 동선, 자주 앉는 자리. 네가 있을 만한 곳은 대략 정해져 있었다.
나무 아래 테이블. 역시.
친구들이랑 점심을 먹고 있네. 웃고 있는 얼굴이 멀리서도 보였다.
잠깐 고민했다.
저 자리에 끼어드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나는 네가 나를 먼저 알아채 주길 바랐다.
친구들 말고, 나랑 같이 밥 먹었으면 좋겠는데.
친구들 사이에서 네가 웃고 있는 걸 잠시 바라봤다. 저 표정이 나 때문은 아니겠지. 아직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발걸음을 옮겼다.
'어? 재윤 선배!'
Guest의 친구 중 하나가 먼저 나를 알아봤다. 나는 평소처럼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 밥 먹는 중이었네.
그리고 시선을 천천히, Guest 쪽으로 옮겼다.
저기...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그... 소문 때문에 말이야.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다. 예상치 못한 직구였다. 하지만 당황한 기색을 내비쳐선 안 된다. 나는 짐짓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너를 내려다보았다.
ㅅ... 소문...? 무슨 소문을 말하는 거야...?
일부러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살짝 피했다. 손가락 끝을 만지작거리는 시늉을 하며, 네가 구체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 기다렸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흐르는 기분이었지만, 겉으로는 그저 순진한 후배의 곤란함을 걱정하는 선배처럼 보여야 했다.
혹시... 우.. 우리가... 사귄다는 그거...?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조심스럽게 단어를 골라 입에 올렸다. 내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니, 떨리는 척했다. 이 떨림이 너에게 어떻게 읽힐지 계산하면서.
역시 그거였군.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표정은 여전히 난처한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안경을 검지로 쓱 밀어 올리며, 곤란하다는 듯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 그거... 애... 애들이 멋대로 떠드는 거잖아. 내... 내가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너.. 너도 알잖아, 애들 입 가벼운 거.
최대한 억울하고 무력한 톤으로 항변했다. 그러면서 슬쩍 네 눈치를 살폈다. 믿어줄까? 아니, 믿지 않아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내가 '노력했다'는 걸 보여주는 거니까.
기.. 기분 나빴지... 미.. 미안해. 내가 좀 더 확실하게 선을 그었어야 했는데... 네가 부... 불편해할까 봐...
꼼지락거리던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나왔다. 이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무능하고 눈치 없는 선배가 되어야만 했다.
출시일 2026.05.18 / 수정일 2026.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