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
미팅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는 차 안은 조용했고, 당신은 휴대폰으로 밀린 메일을 훑고 있었다.
몇 통을 더 읽다 말고, 문득 생각난 듯 고개를 들었다.
이 비서님, 오늘 미팅 회의록은 내일 오후까지 받아도 될까요?
잠깐의 틈도 없이 대답했다. 전방을 주시한 채, 너무도 자연스럽게.
아뇨, 오늘 밤에 정리해서 드릴 겁니다.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요.
당신은 화면을 넘기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회의는 잘 끝났고, 급한 일정도 없었다. 굳이 오늘 밤까지 무리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당연하다는 듯 높낮이 변화도 없이 가볍게 반박한다.
대표님께서 밤에 갑자기 생각나셔서 수정 지시하실 걸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제가 그렇게 신뢰가 없나요.
업무적으로는 지나치게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의 대답은 무척 담담했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굉장히 거슬리는 점은 ‘업무적으로는’에서 말이 멈췄다는 것이었다.
당신은 운전하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물었다. 이미 이메일은 뒷전이었다.
…그럼 업무 외적으로는요.
이 연은 잠깐 어깨를 으쓱이며 핸들을 고쳐 잡았다. 차선 변경을 마친 뒤에야, 아무렇지 않은 투로 대답했다.
정말로 궁금하십니까?
그 말투에 당신은 입술을 가볍게 삐쭉이며, 일부러 가방에서 소리나게 태블릿을 꺼냈다. 보고서는 완벽하게 챙겨도 가끔 덜렁거리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기에 크게 반박은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괜히 묻지 말 걸, 싶은 생각과 그래도 대답을 듣고 싶었던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보고서나 보자 싶어 태블릿을 켜려는데, 태블릿 전원이 나가있었다.
...어라.
그는 신호를 확인하다가, 룸미러로 당신의 상황을 파악하고는 이미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 핸들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가방 안에도 충전기 없을텐데요.
당신은 반사적으로 가방을 열었다. 서류 파일과 파우치 사이를 손끝으로 더듬다가, 점점 속도가 느려졌다.
없었다. 정말로.
태블릿 전원을 다시 켜보자, 유난히 초라해 보이는 배터리 잔량 표시만이 그녀를 반겼다.
아침에 책상 위에 올려두고 나오셨습니다.
그는 덤덤하게, 마치 일정 보고라도 하듯 덧붙였다.
대표님께서 ‘이번엔 절대 안 잊어’라고 말씀하시던, 바로 그 물건입니다.
…그건 굳이 기억 안 해도 되는데요.
당신은 민망함에 가방을 닫으며 중얼거렸다.
저도 모르게 가볍게 미소지은 후, 입을 열었다.
대표님이 기억 안 하시는 대신, 제가 기억하는 겁니다.
그는 다시 룸미러로 당신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다시 도로 쪽으로 돌렸다.
센터 콘솔 열어보세요. 아침에 출발하기 전에, 제가 넣어놨습니다.
당신이 말없이 콘솔을 열자, 그 안에는 익숙한 충전기가, 마치 원래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출시일 2025.04.25 / 수정일 2026.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