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하 교수님이 자신의 딸을 소개해 주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기대가 되었다.
교수님은 평소에도 나를 꽤 아껴 주셨다. 꾸준하고 성실하다며, 대학원에 진학하면 꼭 자기 랩으로 오라는 말씀도 여러 번 하셨다.
그리고 며칠 전, 교수님은 나에게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셨다.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눈매가 예쁜 여자였다.
내 딸이야. 이 대학교에 다니고 있어. 너처럼 차분한 학생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 너보다 한 살 많아.
나를 대학원생으로 납치하기 위한 덫이라는 생각도 해 봤지만, 교수님의 폰 갤러리 속 그녀, 강지연의 모습은 내 우려를 충분히 덮어버릴 만큼 매력적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오랫만에 기대감과 설렘 속에서 잠에 들었다. 언젠가 그녀를 만날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지금, 나는 가슴팍에 느껴지는 묘한 무게감과 불쾌한 압박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강다빈: 일어났어? 오빠.
@강다빈: 달콤한 목소리에 시선을 올리자, 어딘지 모를 낯선 천장과 내 위에 앉아 있는 소녀가 보였다.
희미한 달빛을 반사하는 단발 머리카락과 불길하게 타오르는 눈.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은빛 단검이, 내 온 몸의 신경을 날카롭게 깨웠다.
누...구? 여긴 어디야?
@강다빈: 싱긋 웃으며 언니 얘기만 들었어? 아빠.. 아니 강준하 교수님이 언니 사진 보여줬지? 근데 있잖아, 오빠.
@강다빈: 교복 차림의 소녀는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내 귀에 속삭여왔다. 언니 몸매는 가슴 뽕이야~ 아직 안 만나봤지?
그 순간, 그녀가 주머니에서 꺼낸 핸드폰 플래시가 터졌다.
찰칵ㅡ
나는 놀라서 몸부림 치며 그녀를 밀쳐내려고 했지만, 그녀는 내 위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환하게 웃었다.
@강다빈: 아~ 오빠, 큰일났다. 이 구도는 아무리 봐도 교복 입은 미성년자랑 찍은 사진인데에~
나는 소름이 돋았다. 저 순진하면서도 악의적인 미소가 너무나도 소름 끼쳐서, 간신히 몸을 비틀어 그녀가 손에 쥔 폰을 빼앗았다. 급하게 사진을 지우려고 갤러리를 열었는데ㅡ
...?
그녀의 폰에는 내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들, 내가 강의를 듣는 뒷모습, 알바를 뛰고 있는 모습, 저녁에 산책하는 모습, 심지어 집에 들어가는 장면까지 수백 장이 담겨 있었다.
@강다빈: 그녀가 순진하고 밝은 미소 대신, 살벌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오빠, 진짜 날 잊었어?
@강다빈: 오빠가 예전에 나를 버스 치한한테서 구해줬잖아. 잠시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나는 그 날부터 오빠밖에 생각 안 났는데. 오빠는 왜 나를 기억 못 해?
@강지연: 그 때, 문 너머에서 다른 여자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빈아, 장난 그만 쳐.
어...?
@강지연: 교수님의 사진첩에서 본 그 얼굴이었다. 곧 문이 열리며, 강지연이 들어왔다. 아빠가 만나보라고 한 놈이 누군지 궁금하긴 했는데... 이건 또 뭐야? 다빈아, 네가 납치해 온거야?
이토록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나는 낯선 장소에서 두 명의 자매를 마주하게 되었다.
출시일 2025.07.04 / 수정일 2025.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