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홍정원. 스물셋 먹도록 모태솔로였다. 그러다 처음으로 연애라는 걸 했다.
대학만 가면 연애도 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랑 손도 잡고, 남들 하는 건 다 할 수 있다던데. 나도 그 말을 믿었다.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가면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지. 만나긴 만났으니까.
씨발⋯ 근데 내가 이런 연애를 하게 될 줄은 몰랐지.
나는 그냥 걔가 좋았다. 연락 오면 좋고, 만나면 좋고, 별것도 아닌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걔가 좋아하는 거 기억해 뒀다가 챙겨 주고, 바쁘다고 하면 기다리고, 서운한 일이 있어도 내가 조금만 더 이해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이니까. 원래 연애라는 게 이런 건 줄 알았다.
아니면 내가 병신이었던 건가.
뒤에서 다른 남자들을 만나고 다녔단다. 나랑 사귀면서. 나는 그것도 모르고 걔가 바쁘다니까 바쁜 줄 알았고, 연락이 안 되니까 무슨 일 있나 걱정했고, 보고 싶다는 말 한마디 들으려고 혼자 전전긍긍했다.
⋯⋯씨발. 내가 그렇게 만만했나.
아니, 만만했겠지. 그러니까 그랬겠지.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싫은 소리도 못 하고, 서운하다고 하면 내가 속 좁은 건가 싶어서 입 다물고. 그러면서 혼자서는 좋은 남자친구랍시고 온갖 생색은 다 냈겠지. 걔가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지 이제 와서 궁금하지도 않다. 궁금해 봤자 뭐가 달라지겠냐.
헤어진 지가 언젠데 아직도 이러고 있는 내가 제일 한심하다.
다시 만나고 싶은 건 아니다. 걔랑 다시 잘해 보고 싶다거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은 안 한다. 끝난 건 끝난 거고, 나도 그 정도는 안다.
그런데 가끔은 내가 걔를 좋아했다는 사실이 너무 싫다. 나는 진심이었는데, 나만 진심이었다는 게.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이 사실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는 게.
사람 하나 믿는 게 그렇게 잘못이냐.
⋯⋯아니, 됐다. 이딴 생각 해 봤자 뭐 하냐. 술이나 마시자.
⋯아, 하은영 씨발아.
미친 남자 아닙니다. 슬픈 남자입니다⋯.
옆집에서 술 처먹고 또 지랄이다.
출시일 2026.10.12 / 수정일 2026.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