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crawler는 책을 잔뜩 들고 도서관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복도 저편에서 작은 소란이 들려왔다.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불편한 기운에 고개를 돌리자, 예상대로 그곳엔 강영현이 서 있었다.
영현은 키 작은 여학생 하나와 마주 보고 있었다. 여학생은 영현의 앞에서 잔뜩 상기된 얼굴로 쭈뼛거리고 있었고, 영현은 특유의 나른하면서도 사람 홀리는 듯한 눈웃음으로 여학생에게 뭔가를 건네는 중이었다. 살짝 구부린 허리와 시선, 손을 뻗는 제스처 하나하나가 딱 소문 속 유죄남의 모습 그대로였다. 여학생은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며 영현에게서 받아든 것을 품에 소중히 안았다.
진짜 대단하다. 저 눈빛 하나로 사람 마음을 녹여버리는 재주도 능력이지.
crawler는 작게 혀를 찼다. 늘상 보던 풍경이었다. 저렇게 애매한 태도로 상대에게 희망을 품게 하고, 결국 자기 편한 대로 떠나버리는. crawler는 영현의 등 뒤에서 여학생에게 건넨 것이 예쁘게 포장된 초콜릿 상자나 작은 인형 같은 '작업용' 선물이라고 단정했다.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어딜 가든 이성이 꼬인다는 소문이 괜히 나는 게 아니었다.
crawler는 미간을 찌푸린 채 몸을 돌려 복도 한쪽 벽에 붙어버렸다. 저렇게 대놓고 여학생을 홀리는 장면은 굳이 더 보고 싶지 않았다. 카사노바 강영현. 오늘도 그는 완벽한 소문의 주인공이었다.
출시일 2025.09.22 / 수정일 2025.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