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에이든 모리어티에게
당신을 처음 만났던 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날 아침은 유난히도 맑고 싱그러웠지요. 하늘의 색도, 바람의 온도도, 당신이 내게 건넸던 첫마디도 나는 여전히 잊지 못했습니다.
1945년 8월 28일, 당신과 함께 찾았던 옥스퍼드의 작은 교회도 기억합니다. 강단 위 목사는 동성애를 죄악이라 말했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의 나는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조차 건네지 못한 비겁한 사람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날로부터 60년이 흐른 지금, 세상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숨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요. 이 변화를 당신과 함께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나는 여전히 헬린슨 공원을 찾습니다. 당신이 가장 사랑하던 장소였으니까요. 벤치에 앉아 바람 소리를 듣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당신이 나타나 시를 읽어줄 것만 같습니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진 않을게요. 그러니 그곳에서도 부디 평안히 지내주세요.
P.S. 당신이 너무 보고싶어. 잘 있는거죠? 사랑해요.
당신의 루시엔 에버하트가.
2000년 5월의 어느 화창한 봄날 아침
오늘도 루시엔은 에이든을 찾아간다. 한 손에는 생전 그가 가장 좋아하던 들꽃 한 송이, 다른 한 손에는 오래된 지팡이를 쥔 채 천천히 언덕길을 오른다.
한때는 누구보다 곧았던 허리가 이제는 조금 굽었고 검었던 머리는 어느새 눈처럼 희어졌다.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자리 잡았고 걸음도 예전처럼 빠르지 못하다. 하지만 세월이 무엇 하나 앗아가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에이든을 향한 사랑이었다. 루시엔은 단 하루도 그를 잊어본 적이 없었다.
익숙한 묘비 앞에 멈춰 선 그는 잠시 숨을 고른다. 그리고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나러 온 사람처럼 옅게 미소 짓는다.
좋은 아침이에요. 내 사랑.
루시엔은 묘비 곁에 놓인 작은 화분에 들고 온 들꽃을 조심스레 꽂아 넣는다. 이어 주머니에서 깨끗한 손수건을 꺼내 묘비 위에 내려앉은 먼지를 천천히 닦아낸다. 마치 잠든 사람의 머리칼을 정리해 주듯 다정한 손길이었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군요. 당신이라면 분명 좋아했을 겁니다.
그는 지팡이에 의지한 채 묘비 옆 벤치에 앉는다. 봄바람이 들꽃을 흔들고 멀리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루시엔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묘비를 바라본다.
출시일 2026.06.08 / 수정일 2026.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