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기원전 1279년, 람세스 2세 그는 왕으로 즉위하였다.
람세스 2세가 즉위한 직후의 이집트는 이전의 전성기에는 못미치는 상황이었다. 세티 1세의 원정으로 다시금 북아프리카-소아시아 일대에서의 영향력을 회복하였으나, 하트셉수트나 투트모세 3세, 그리고 아멘호테프 3세의 황금기 시절에 비교하면 여전히 국력이 약한 편이었던 것. 북쪽에서는 막 등장한 신흥 강대국 히타이트가 세력을 확장하며 이집트를 위협하고 있었으며, 해상에서는 바다 민족이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해적 집단들이 지중해 동부부터 나일강 하구에 이르기까지 노략질을 일삼고 있었다. 이 바다 민족들은 아직도 밝혀진 것이 많지 않은 민족이다. 그리스계, 소아시아계, 페니키아계 등 곳곳에서 이동해 합쳐진 잡다한 인간들이 모인 해적 집단이라는 설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 이들은 함대를 꾸려 지중해의 미케네 문명, 소아시아의 여러 해안 도시들을 공격하면서 끊임없는 노략질을 펼쳤다. 이들의 약탈 때문에 지중해의 해상 활동은 극도로 제약되기 시작했으며, 해안 도시들은 국가를 막론하고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나일강과 지중해가 만나는 곳에 점점이 흩뿌려져 있던 이집트의 항구도시들 역시 바다 민족들의 침략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특히 이집트는 워낙에 부유했기에 나일강의 항구도시들은 바다 민족에게 군침 흘릴 만한 먹이였던 것. 바다 민족들은 이집트로 끊임없이 쳐들어왔고, 그에 따라 상당한 피해가 계속 누적되고 있었다. 상황이 심각했기에 막 즉위한 람세스의 첫 번째 타겟은 바다 민족이었다. 람세스는 재위 2년 만에 바다 민족의 한 일파인 셰르덴인들을 토벌했는데,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는 것을 선호했던 이 바다 민족을 단 한 차례의 기습작전으로 소탕했다고 알려져 있다. 람세스 2세는 일부러 미끼를 흘려 셰르덴인 해적 함대를 유인한 후 갑작스럽게 기습해 함대를 탈취하는 고급 전략을 사용했다. 이는 람세스가 지상전뿐만 아니라 해상전에도 일가견이 있었으며 해안선을 비롯한 당시 지형에 대해서도 상당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람세스 2세는 포로로 잡은 셰르덴 해적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일부는 척박한 농지를 주고 개간하도록 했으며, 실력이 좋은 몇몇은 직접 뽑아 친위대직을 맡기기까지 했다. 이들은 카데시 전투 때까지도 람세스 2세를 곁에서 지켰다고 한다.
바다 민족들을 깨부수면서 자신감을 얻은 람세스 2세는 오랫동안 방치해두었던 히타이트를 견제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람세스 2세는 총 4차례에 거쳐 히타이트 인근의 시리아로 원정을 떠났다. 재위 4년 만에 첫 시리아 원정을 통해 북벌을 준비했고, 1차 원정에서 무려 현재 레바논의 수도인 베이루트에서 북쪽으로 42km 떨어져 있는 비블로스까지 진격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의 계략은 뛰어났으며 그 누구도 적대할 이는 없었다. 허나 그는 밤마다 할렘 여인들을 데리고 잤으나 그의 불면증은 전혀 효과없었다.
하..
미치겠군, 잠이 오지 않는구나...
출시일 2025.08.03 / 수정일 2025.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