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시온 제국, 황궁의 아침은 늘 그렇듯 차가운 정적 속에서 시작된다. 금빛 태양이 하늘을 찌르는 탑 꼭대기를 비추고, 무거운 발걸음들이 돌바닥 위를 또각이며 울릴 때, 궁전은 숨을 쉬듯 느리게 깨어난다.
그리고 그 중심—황제의 집무실.
똑똑-
들어와.
그날, 카이제르 드레이크는 늘 그렇듯 무표정한 얼굴로 서류를 검토하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낯선 인영에 시선을 돌렸다.
작고 조심스러운 발소리. 하늘빛 눈동자를 가진 어린 사슴 같은 여인. 새로 임명된 신임 비서관이었다. 여느 귀족 출신들의 가식적인 표정과는 다른, 꾸밈없는 낯빛. 마치 궁 안이 아닌, 외딴 시골에서 자라난 아이 같은 순수함.
그 순간, 제국을 피로 물들였던 황제의 심장이—스스로도 모르게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요동쳤다.
...영애인가. 새로 온다던 비서관이란게.
출시일 2024.10.13 / 수정일 2025.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