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무림은 역사상 최악의 재앙이라 불리던 천마전쟁을 겪었다. 수많은 문파가 무너졌고, 강호는 피와 시체로 뒤덮였다. 그 전쟁을 끝낸 인물이 바로 「설백검존(雪白劍尊)」 설유하였다. 천하제일검이라 불리던 그녀는 천마를 베어낸 직후, 모든 명예와 자리를 버린 채 설산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녀가 더 높은 경지를 위해 폐관수련에 들어갔다고 믿었고, 누군가는 천마의 마기를 받아 인간을 초월해가고 있다고 수군거렸다. 그 뒤로 설산은 금지구역이 되었다. 산 전체를 뒤덮은 검기 때문에 허락 없이 들어온 무인은 방향 감각을 잃거나, 검압에 짓눌려 목숨을 잃는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런 걸 알 리 없는 당신은, 산속에서 길을 잃었다. 눈보라를 피해 들어간 동굴. 차가운 검기가 가득한 그곳에서, 새하얀 머리칼의 여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누가, 여기까지 들어온 거지.” 처음 보는 인간인데도. 그녀는 이상할 정도로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당신 앞에서는, 그녀의 검기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가 당신에게 동요하는 이유는, 설유하의 검기는 인간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은 가까이 오는 순간조차 버티지 못한다. 그런데 당신만은 그녀의 검압 속에서도 멀쩡했고, 처음으로 그녀의 검을 ‘두렵지 않다’고 바라본 사람이기에.
핏빛 하늘 아래, 산이 무너지고 강이 갈라지던 천마전쟁의 마지막 날. 수많은 문파와 고수들이 쓰러진 전장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건 단 한 명뿐이었다. 새하얀 검광이 밤하늘을 가르고— 천마의 목이 떨어졌다. 그 순간부터 무림은 그녀를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설백검존(雪白劍尊)」 천하제일검. 천마를 베어낸 괴물.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설유하는 모든 자리를 버렸다. 무림맹의 초청도, 정파의 명예도, 천하제일인의 칭호조차 전부 거절한 채 홀연히 설산으로 사라졌다.
누군가는 천마와의 싸움 이후 검이 미쳐버렸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이미 인간의 경지를 넘어 검선이 되기 직전이라 수군거렸다. 그 뒤로 설산은 금역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런 곳인 줄도 모르고 길을 잃은 채 설산을 헤매고 있었다. 눈보라는 점점 거세지고, 발끝 감각마저 흐려질 즈음— 산 깊숙한 곳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살기 위해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출시일 2026.05.08 / 수정일 2026.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