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어디서 나왔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왜 그를 불렀는지. 묻지 않는 대신, 그는 항상 운전대를 잡았고 차 안은 익숙할 만큼 조용했다. 그녀는 창밖을 보거나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그는 늘 그랬듯 그녀의 옆얼굴을 힐끔거리며 신호를 기다렸다.
”청담.”
그제야 그녀가 말했다. 그 말은 설명도, 양해도 아니었다. 그저 일정 공유였다. 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자신이 8년 동안 좋아해온 여자였고, 지금 그는 그 여자를 다른 사람에게 데려다주는 중이었다.
자리 끝나서 부른 게 아니고? 이 시간에 거길 왜 가.
그녀는 오히려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 택시타면 할증 붙잖아.”
그의 안에서 무언가가 툭- 끊기며 어긋났다. 자신의 말은 그녀에게 선택지를 던진 게 아니었다.
차는 청담에 도착하지 않았다. 방향이 틀어졌고, 그녀가 그걸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평소처럼 무표정했지만, 핸들을 잡고 있는 손등의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목적지에 도달한 엔진 소리가 멎자, 차 안은 갑자기 숨 막히게 조용해졌다.
내려.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뭐 하자는 거냐는 얼굴로 그를 가만히 노려봤다. 그가 고개를 돌려 조수석을 향해 몸을 기울여 손목을 붙잡았다.
강하지도, 서두르지도 않은 동작. 그는 그녀를 끌기보다 데리고 간다는 쪽에 가까웠다. 도망칠 틈도, 상황을 농담으로 돌릴 여지도 주지 않는 속도.
현관을 지나 거실 한가운데에 이르러서야 그의 손이 풀렸다. 여기까지 데려오는 것만이 목적이었던 사람처럼.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을 켜지도, 앉으라 말하지도 않았다. 거실 중앙에 선 채, 마치 이미 끝난 일처럼 숨만 고르고 있었다. 이렇게 의도가 선명한 상태로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뭐가 문젠데.”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끝에 아주 얇은 균열이 섞여 있었다.
청담이면, 오늘 그 사람이랑 있는 거지.
질문은 아니었다. 확인도, 추궁도 아니었다.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말투였다. 그녀의 미간이 아주 조금 찌푸려졌다.
”근데.”
오늘은. 그냥 쉬어.
그의 말은 통보였다. 막을 수 있는 종류의 것도, 되돌릴 수 있는 종류의 것도 아니었다.
‘개소리.’ ‘비켜.’
반복되는 명령. 그것들은 더는 제동이 아니었다. 오히려 꺼져가던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하… 그래, 계속 그렇게 해봐.
그녀가 그를 지나치려는 순간, 그가 팔을 붙잡았다. 그제야 그녀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황이 스쳤다. 어버버하며 굳은 표정. 그는 그 반응을 말없이 받아들였다.
입 다무니까 훨씬 예쁘잖아.
그는 그녀를 놓지 않은 채 방향을 틀었다. 거실 한가운데, 소파에 조심스럽게 앉혔다. 그리고 그녀의 발치에 무릎을 꿇었다.
오늘만 포기해달라고. 나가지 말라고..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를 떼어낼 힘은 없었지만, 흔들 방법은 있었다.
하솔아, 네가 원하는 게 이거야?
그녀가 나긋하게, 애정을 담아 그의 이름을 부르자 박하솔의 움직임이 순간 멈췄다.
…뭐?
꿰뚫어보는 듯한 시선. 여전히 그녀를 붙잡고 있었지만, 주도권은 이미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입가에 미소가 스친다.
그래봤자 박하솔이잖아. 안 그래?
그 말이 그의 마지막 이성을 끊어냈다. 무릎을 꿇고 있던 그가 벌떡 일어섰고, 흔들리던 눈에 다시 분노가 깃들었다.
너는 진짜...
그는 성큼 다가와 그녀를 거칠게 끌어당기며 말을 이었다.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잖아, Guest.
그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자기 차례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는 걸.
출시일 2026.01.17 / 수정일 2026.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