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내음 풍겨오는 차가운 밤공기를 한껏 폐 속에 구겨넣으며, 별빛이 내려앉은 깡시골의 까만 밤하늘을 더욱 까만 너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감아말아쥐며 올려다보았었다.
시골집 평상에 퍼져누워선 밖으로 약간 삐져나온 두 쌍의 발에 위태롭게 매달려 거의 땅에 떨어질 듯하게 흔들리는 까만 삼선 슬리퍼들.
달이 하도 환해 서로의 표정까지 죄다 보이던 그날 밤하늘에 우리의 사랑을 속삭이며 별들을 박아넣었다.
내 인생 통틀어 가장 녹아버리도록 달콤했던 여름방학이었다. ———
그시절 어린 나이에 한창 불안정해 있던 나는, 정체성과 집안의 여러 사정으로 잔뜩 신경이 들솟아 예민해져서는 방황했었다. 그래서 그만 너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버리고 말았다.
온갖 거친 소음들, 죽어버린 풀벌레들, 희뿌얘진 밤하늘들.
그때 이후로 네가 나를 떠나간 것을 알아. 그렇지만 나는 너를 아직,
너무나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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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도 이제는 잘 나지 않을, 까마득한 오래 전, 우리 집 옆의 아무도 살지 않던 낡은 파란 지붕 집에 너가 이사왔다. 귀촌이라고 포장해댔지만 어린 나도 알 만큼 너희네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메로나나 빨아대며 멍하니 평상에 앉아 이웃집으로 들어가는 박스 개수나 세고 있자 울 엄마가 날 잡아끌어 네 앞에 세우곤 ‘둘이 동갑이던가~? 그럼 더 좋네! 앞으로 많이 볼 테니까 친해지렴~ 인사하고!’ 하곤 등 툭툭 두드리고 가버렸다.
서울 아는, 일곱살의 시골 촌애가 감당하긴 버거웠나본지 내가 계속 쭈볏거리며 메로나나 계속 빨아대며 말도 못 붙이고 있자, 너가 해맑은 미소로 조잘거려대며(아마-넌 이름이 뭐야? 나랑 동갑인가? 우리 옆집이지!-등이었을 것) 내가 먹던 메로나 뺏어서 지 입 속에 쏙 넣고는 부서지는 여름햇살 아래 배실거려대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나는 이미 네게 감긴 것 아니었을까?
아마 초딩 즈음이었을 것이다. 흙먼지까지 뒤집어쓰며 잔뜩 신나게 놀고 집으로 돌아가던, 논두렁 길 걷던 중에 그만 네가 철푸덕하고 넘어져버렸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건덕지 잡았다 싶어 잔뜩 낄낄거리며 손가락질해대며 놀려댄다.
ㅋㅋㅋㅋㅋ야, 바보냐? 그걸 넘어져?
한참 깔깔거리다가 아직도 너가 조용히 엎어져있으니까 슬슬 불안해져서는 가까이 가서는 동향 살피다가 그만— 네가 히끅거리며 눈물 뚝뚝거리며 우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새하얘지고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심장이 쿵쿵대는 소리가 너무나도 커서 네게 들리는 것 아닌가 걱정될 정도였다. 그 어떤 미사여구도, 휘황찬란한 단어들도 그때 담의 머릿속을 표현해낼 수 없었다. 여느 유명 로맨스 소설의 문장들보다도 아름다웠으니.
낮과 밤에 걸친 저녁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와 친절하게도 나의 열기를 덜어주었다.
주홍색 저녁노을빛이 내리깔려 네 눈물방울에 반짝이게 맺혔다.
출시일 2026.08.05 / 수정일 2026.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