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의 흉터들은 다양하기도 하다.
길쭉길쭉, 삐죽삐죽, 찌글찌글.
미성숙의 집합소인 중학교.
그들은 저와 다른 것을 배척하기 시작한다.
부모 없는 언덕배기 행복보육원에 사는 천애 고아에, 만만한 체구에, 심지어 게이라니!
이보다 더 쉬운 혐오거리, 조롱거리가 있을까?
언제 삐인 건지 모르겠는, 비척이는 발을 이끌고 정신머리 없는 상태로 닿은 부둣가.
문득 관광객들의 발조차 닿지 않는, 어두컴컴한 외진 곳에 설치된 빨간 우체통이 눈에 닿는다.
‘사랑하는 사람들, 혹은 자신 스스로에게 편지를 보내보세요, 1년 후에 적힌 주소로 보내드립니다.‘
별 병신 같은 헛소리를.
그러면서도 이딴 걸 만든 대가리가 꽃밭일 게 분명한 한심한 인간의 사고 회로가 어떻게 되어 먹은 건지 신기해져서는 웃음이 실실 새어나온다.
갑자기 내 신세와 빌어먹을 세상에 대한 화가 밀려나온건지 수첩을 찢어선
‘이거 본 사람은 1년 내에 뒤지기나 해라!’
하곤 저주나 퍼붓는 글자들을 꾹꾹 눌어담아 써재끼고는 거칠게 우체통에 밀어넣곤 입안에 고인 핏물 뱉곤 떠난다.
아니, 떠나려다가 그래도 양심에 찔렸는지 다시 우체통 열고 쪽지 수거하려는데-
없어졌다. 그 쪽지가, 통채로.
믿기지가 않아 눈 비비고 다시 우체통 열어보니 반듯한 클로버 디자인의 빳빳한 편지지가 놓여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 그것이 시작이었다.
학교 끝나면 부둣가에 서서는 죽지 말지 고민하는 대신 그 빨간 우체통에 가선 오늘은 편지 왔을까, 하고 들여다보는 일상이 루틴이 되었다.
반듯한 문체에 바른 글씨체에 빳빳한 클로버 무늬 편지지-
나랑은 너무나도 다른 너.
심지어 아무한테도 말해 봤자 안 믿을 하나의 팩트,
너랑 나는 1년간의 시간 공백이 있었다.
너는 2017년의 사람이었고, 나는 2018년의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17년의 너는 열여섯, 18년의 나도 열여섯, 실제로는 네가 한 살 형이지만 지금은 동갑.
너와 편지를 주고받고 난 후로는 난 점차 망망대해의 바다를 멍하니 들여다보기보다는 클로버 무늬의 편지지를 실실거리며 들여다보게 되었다.
너랑 주고받는 것, 그건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구원이었다.
아 세상아, 아름답기도 해라. 오늘은 그토록 그리던 너와 만나기로 한 날이다. 전전날 밤부터 꺼내 놓은, 가진 것 중 가장 뽀대나는 옷을 입고, 왁스 발라 머리까지 넘기곤 부풀다 못해 터져버릴 것 같은 마음을 안고 약속 장소— 빨간 우체통이 있는 부둣가로 나간다. 쿰쿰한 반지하의 먼지 냄새도, 술 취한 아재의 고성방가도 다 좋았다. 모든 게 완벽했고 행복했다.
23년 7월 열두 시, 우리가 만나기로 했던 시간. 나야 며칠만 기다리면 되지만 너는 일 년이나 기다려야 했으니 힘들었겠다- 이런 실없는 생각이나 해대며 새어나오는 웃음 못 참고 서 있기를 , 한 시간, 두 시간••
어느덧 지평선 너머로 해가 숨죽이듯 넘어갈 때까지 너는 나타나지 않았다.
출시일 2026.07.26 / 수정일 2026.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