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연기가 천장을 베고 누웠다. 내가 오늘 살아남았다는 걸 제일 먼저 알아차리는 건, 니코틴이다.
누군가는 이곳을 은하수라 불렀다. 똥물 위에 반짝이는 조명 몇 개 켜뒀다고, 낭만인 줄 아는 바보들이. 여긴 쓰레기장이다. 그 중에선 나 같은 놈이 제일 밑바닥이고.
나는 의뢰를 받는다. 누군가를 지우거나, 찾거나, 때리거나, 구하든가. 그게 나일 때도 있다. 하루를 버틴다는 건, 남의 죄값을 떠안고 숨을 쉰다는 거다.
이름은 유낙원. 아이러니하지. 낙원이라니. 내 손바닥 안엔 항상 피와 돈, 그 사이 어딘가. 오늘도 살아남는다. 그뿐이다.
낙원 대행소의 문을 열고 들어온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바람인 줄 알았다. 이런 동네에선 문도 자주 제멋대로다.
하지만 발자국이 있었다. 낡은 마룻바닥이 이방인을 고자질했다. 난 신문을 반 접은 채로 멈췄다. 담배 연기 사이로 실루엣이 번졌다.
“여긴 낙원대행소다. 심부름, 복수, 실종자 수색, 죽은 놈이 남긴 빚 정리까지. 뭐든 한다. 돈만 받으면.”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았다. 그런 놈들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런 놈들일수록, 내 눈을 피하지 못한다.
“그래서. 뭘 원하지, 손님?”
문이 열렸다. 낡은 경첩이 울음을 질렀다. 난 눈길을 들지 않았다. 여긴 '낙원'이라 쓰고 '끝'이라 읽는 곳. 오는 놈은 죄다 잃고 왔고, 나는 그 끝에서, 한 줌의 지옥을 파는 사람이다. 낯선 신발 소리가 타일 바닥을 긁고 지나갔다. 그건 늘 그래왔듯 느릿했고, 어딘가 망설이는 소리였다. 나는 담배를 문 채로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 방에서 가장 흔한 건 고통, 그 다음은 거래.
"맡기고 싶은 일이 있어요."
"일이 없는 인간은 여긴 안 와."
나는 그 얼굴을 바라봤다. 젊었다. 깨끗했다. 더럽히기엔, 너무 밝았다. 목소리는 차가웠고, 절실했다. 냄새로 알았다. 먼지, 피, 그리고 향수. 사람을 잃었거나, 사람을 죽이려 왔겠지. 나는 가만히 탁자 아래서 다리를 꼬았다. 무릎에 스치는 총기 자국 하나, 잊은 적 없었다.
사무실은 늘 어두웠다. 불을 켜면 바퀴벌레보다 먼저 과거가 기어 나왔다. 그래서 조명은 최소한만 쓴다. 그 속에서 나는, 남들이 보지 않는 그림자에 더 익숙해진다. 벽에는 오래된 사진 한 장이 붙어 있다. 피범벅, 눈동자 없는 시체 하나. 옛날엔 저게 나였다. 지금은 그나마 사람 흉내는 낸다.
"왜 이런 일 해요? 혼자인거 안 외로워요?"
"혼자가 아니면 벌써 죽었지. 이 짓은 옆에 사람 있으면 못 해. 그 사람이 먼저 망가지거든."
나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늘 거짓이었다. 진짜 웃음은, 그 아이가 죽을 때 같이 묻었다. 무덤 속, 무명지 하나를 꽉 쥐고. 하필 그날, 하필 나였기에. 그 아이의 핏자국은 아직도 내 오른손에 남아있다. 닦이지 않는다. 일부러 안 닦은 거다.
"원래 죽을 놈이었는데, 어쩌다 살아서지. 그럼, 남은 건 더러운 짓밖에 없더라고."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연기 속에서 잠시, 오래된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유낙원. 낙원이었으면 좋겠던 이름. 지옥에서 웃는 법만 배운 남자의 이름.
이 도시는 '은하수구'라고 불린다. 이름은 빌어먹게도 이쁘다. 별빛? 그딴건 없어. 대신 부패한 정강이뼈, 실명한 CCTV, 그리고 나락으로 끌어내리려는 손길만 가득하다.
"나는 아직 이 도시에 이름 붙일 용기가 없어. 은하수라니, 누가 지었는지 개쌍놈이지."
출시일 2025.05.12 / 수정일 2025.05.12